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세 정치인으로 숱한 역경을 딛고 올해 나란히 최고 국가지도자 자리에 오르는 등 닮은꼴 삶의 궤적을 밟아왔다.
박 대통령은 1974년 모친인 육영수 전 여사의 피격 사망에 이어 79년 10ㆍ26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서거하는 시련을 겪었다. 이후 18년 동안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하다가 98년 재보선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고배를 딛고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 부녀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 혁명 원로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의 아들인 시 주석은 혁명 원로나 고위 관료의 자제를 일컫는 '태자당'(太子黨) 출신이다. 하지만 시 주석의 성장기 역시 순탄치 않았다. 문화대혁명 당시 부친이 반당분자로 몰리는 바람에 14세 때 하방된 시 주석은 7년 간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시 량자허(梁家河)촌에 있는 산골 토굴에서 지내는 등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다. 시 주석은 당시의 생활에 대해 "벼룩과 노역, 배고픔, 고된 일상, 부적응의 5대 관문을 거쳤다"고 회고했다. 부친의 사상 문제로 공산당 입당을 9차례나 퇴짜 맞기도 했다. 명문 칭화대 졸업 후에도 2007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되기까지 25년을 지방을 돌며 근무했다.
두 정상이 이공계 출신인 점도 공통 분모이다. 박 대통령은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시 주석은 칭화대 공정화학과를 각각 졸업했다. 메모광에다 절약을 강조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시 주석이 박 대통령을 "중국 국민과 나의 오랜 친구(老朋友)"라고 언급했듯 두 정상의 인연은 양국의 어느 정상들보다 깊다. 두 정상은 8년 전인 2005년 7월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처음 만났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였고 시 주석은 저장(浙江)성 당서기 신분이었다. 시 주석이 제안한 면담 희망 날짜는 마침 박 대통령의 지방 방문 일정과 겹쳤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실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과의 면담 일정을 잡으라고 지시했고, 면담은 예정된 30분을 넘겨 2시간 30분 가량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박 대통령은 시 주석 출국 때 관련 자료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은 지난 3월 박 대통령에게 보낸 장문의 친서에서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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