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ㆍ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영원한 리베로', 작년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낸 지도자. 하지만 홍명보 감독도 긴장한 눈빛이 역력했다. '독이 든 성배'라는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직은 그에게도 부담스러운 자리가 분명했다.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홍 감독은 25일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 센터(NFC)에서 열린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오랜만에 이런 자리에 서게 돼 긴장이 된다. 런던 올림픽을 끝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면서 "지금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 동안 쌓아왔던 경험과 지식, 지혜 등 모든 것을 걸겠다.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불사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최상의 전력을 꾸리기 위해 무한 경쟁을 선언한 그는 "우리나라 선수들은 장점이 많다. 이 점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형 축구로 브라질 월드컵 본선 무대를 도전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첫 발걸음을 시작한 홍 감독은 다음달 20일 국내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연맹선수권(동아시아컵)에서 데뷔전을 갖는다. 다음은 홍 감독과의 일문일답.
-어려운 시기에 대표팀을 맡았는데 소감은.
"먼저 최강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선수들에게 축하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 최 감독님은 어려운 환경에서 8회 연속 본선 진출을 해내셨다. 박수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런던올림픽을 끝으로 축구 인생에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다시 한 번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배려로 안지(러시아)에서 5개월 동안 연수를 받았다. 훌륭한 시간이었다. 축구도 많이 배웠고, 인생도 많이 배웠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다시 할 수 있는 힘을 찾았다. 2005년 대표팀 코치를 시작으로 이번에 감독의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그 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걸겠다. 몸과 마음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위해 불사르겠다."
-대표팀 선수 구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
"'홍명보의 아이'들로 불리는 선수들과 3년 정도 환상적인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가 미래를 100% 보장할 수는 없다. 그 선수들과 편안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내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어 선수 구성을 예측할 수는 없다. 올림픽 출신 선수들도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박지성(퀸스파크 레인저스)의 대표팀 복귀에 대해선.
"박지성 선수는 한국 축구를 위해 큰 일을 했다. 앞으로도 큰 일을 해야 하는 선수다. 하지만 대표팀 복귀는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박지성 선수가 은퇴를 발표했을 때도 본인의 의사와 생각을 존중했다."
-이동국은 '홍명보 축구'에 맞는 선수인가.
"이동국 선수에 관한 대표팀 발탁 논란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 선수를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도 선수 개개인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국민들의 생각이나 원하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대표팀의 최종 목표는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면서 정할 것이다."
-어떤 축구를 해보고 싶은가.
"한국형 전술을 만들어서 한국형 플레이로 월드컵에 도전을 하고 싶다. 저흰 스페인 선수도, 독일 선수도 아니다. 우리 선수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전술로 월드컵을 준비하겠다."
-한국형 축구를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우리 선수들은 근면성, 성실성, 팀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이 장점을 바탕으로 전술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비 조직력을 좀 더 가다듬고 싶다. 한국 축구는 그 동안 질적으로 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우리가 '탈 아시아'를 해야 할 시점이다. 어떤 강한 팀과 붙더라도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이유는.
"올림픽 대표팀을 맡고 있을 때 두 번을 포함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세 번을 제안 받았다. 러시아에서 5개월 있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대한민국 축구선수들이 훌륭하다고 느껴졌다. 11개국 선수로 구성된 안지에선 선수들 관리가 쉽지 않았다. 훈련 태도와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우리나라 선수들과 달랐다. 한국선수들과의 생활이 그리웠다.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 누구도 아니다. 국가대표팀 선수들이다."
-최근 대표팀 내 불화설도 불거졌는데.
"대표팀 구성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히 모른다. 아마 경기 내용이 좋지 않다 보니까 그런 우려가 나온 것 같다. 1명의 주장 보다 23명의 주장이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 팀은 무조건 팀 우선이다. 이것이 대표팀의 중요한 슬로건이 될 것이다. 팀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선수는 대표팀에 들어오기 힘들다. 최고의 선수를 뽑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팀을 만들 수 있는 선수를 뽑을 것이다."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받는 조언은.
"히딩크 감독님이 대표팀에서 오퍼가 들어오면 주변에 있는 모든 상황들을 냄비에 넣고 끓여보라고 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이 부담스럽다면 대표팀 감독을 맡지 말라고 조언해줬다. 모든 것을 끓였는데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아 대표팀 감독을 수락했다."
-대표팀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축구에선 골을 넣은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골 결정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수비 조직력은 만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서 준비할 생각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월드컵 본선이다. 동아시아컵 3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 우리 대표팀에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 경기의 승패도 중요하지만 대표팀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겠다.
이창호기자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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