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독이 든 성배'를 들게 될까.
한국의 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 축구의 얼굴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지만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감수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최강희 대표팀 감독은 1년6개월의 '시한부 사령탑' 임무를 마치고 소속팀 전북 현대로 돌아간다. 본인의 뜻이 확고하고, 여론도 좋지 않은 상황이라 연임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조광래 감독에 이어 최강희 감독도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고 '독이 든 성배'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레바논전 졸전과 답답한 공격력은 최 감독이 전북에서 쌓은 좋은 이미지에 타격을 줬다.
'차기 대권'은 홍명보 감독과 세뇰 귀네슈 감독의 2파전이 될 전망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쾌거에 앞장선 홍명보 감독은 1순위 후보다. 대한축구협회는 올림픽이 끝난 뒤 홍 감독에게 대표팀 사령탑 의향을 수 차례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올림픽 동메달 신화 달성으로 국민적인 신망이 두터워 후임 대표팀 사령탑이 되는데 걸림돌은 없다.
홍 감독은 러시아 클럽 안지의 히딩크 감독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은 뒤 지난달 연수를 마쳤다. 소속 팀이 없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차기 대권'을 쥘 수 있다. 홍 감독은 그 동안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러 차례 대표팀 감독직을 정중하게 고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에는 최강희 감독이 지휘봉을 쥐고 있었던 때라 본인이 앞장서서 의향을 밝히기 힘든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 감독이 물러난다는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이제는 본인의 '속내'를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나 1년이라는 시간은 월드컵을 준비하기에 길지 않은 기간이다. 홍 감독은 좀 더 시간을 갖고 체계적으로 대표팀을 운영하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과는 달리 A대표팀 사령탑은 단기간 내에 성적을 내야 하는 자리다. 그리고 현재 대표팀에는 기성용(스완지시티)과 박종우(부산), 김영권(광저우), 김보경(카디프시티), 김창수(가시와) 등이 버티고 있다. 이미 올림픽 대표팀에서 지도했던 선수들이라 선수들을 파악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홍 감독은 공격수 손흥민을 올림픽 대표팀에 불러들여 기량을 살펴보기도 했다.
FC서울의 사령탑을 역임했던 귀네슈 감독은 지난 1월 트라브존스포르 사령탑에서 물러나 신분이 자유롭다. '지한파'로 알려져 있는 사령탑이라 국민들의 반감도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축구 변방 터키를 3위까지 올라서게 만든 '명장'이기도 하다. 그는 종종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대한 호의를 드러낸 바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극비리에 귀네슈 감독을 만났다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한국 선수들을 두루 알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박주영(셀타 비고)과 이청용(볼턴), 기성용이 모두 FC서울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제자들. 이들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의 주축 멤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귀네슈 감독이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뉴페이스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에 선수들을 파악하는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외국인이 후임 감독이 될 경우 거쳐야 하는 숙제기 때문에 큰 걸림돌이 되진 않을 전망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조만간 기술위원회를 열어 차기 사령탑 후보에 대한 추천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후보들과 접촉할 예정이다.
여동은기자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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