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국가정보원의 정치ㆍ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최종수사결과가 발표됐다. 정치권은 물론 온 사회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여권은 선거법 위반혐의를 적용한 것은 무리며,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인권유린 사건과 야당의 선거참모가 국정원 전 직원을 고위직을 미끼로 매수하여 국정원의 기밀을 빼낸 부분에 대한 내용이 없다며 검찰을 힐난한다.
야권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개입하고 심지어 조직적으로 대선에 관여한 것은 국기문란행위인데 불구속기소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서울경찰청장이 수사단계에서 사건을 축소 ㆍ은폐하도록 외압을 행사한 것이 자명한데 불구속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면서 검찰을 질타한다.
검찰의 지금 처지는 말 그대로 동네북 신세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이 진행되는 가운데 가장 많이 나왔던 말 중의 하나가 검찰개혁이다. 특히 지난해 검찰총장과 대검중수부장이 충돌하면서 한상대 검찰총장이 중도에 사퇴하는 검란(檢亂)을 겪었다. 새 정부 출범 직후인 4월23일 대검중수부는 32년의 영욕을 뒤로한 채 간판을 내리기도 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파도남(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는 남자)'이란 명예로운 별명을 얻었다.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한 검찰을 다시 우뚝 세울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이번 '국정원 사건'은 채 총장의 리더십은 물론이고 검찰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각오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었다. 그런데 채 총장도 검찰도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검사는 수사와 기소에 있어서 철저하게 증거주의에 입각해야 한다. 또 위법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엄격하게 법리에 따라야 한다. 검사는 누구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벌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것은 헌법에 따라 오롯이 법관의 몫이다. 검사는 합리적 의심에 바탕 하여 피의자를 소추하고 공소를 유지하여 피의자가 처벌 받도록 법관을 설득해야 한다.
그럼에도 세인의 주목을 받는 사건일수록 일부 검사들은 검사 본연의 임무와 한계를 망각하고는 한다. 정치적으로 미묘한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들은 이리 저리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여론의 향배를 살피기도 한다. 그리고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을지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징벌적인) 구속수사를 하려고 한다. 검사로서는 커다란 훈장을 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원 사건'의 경우, 처음 수사단계에서부터 분란의 불씨가 잠복해 있었다. 대검중수부가 간판을 내린 탓이기도 하지만, 특수부 검사와 공안부 검사가 혼재된 특별수사팀이 수사를 맡았다. 보는 시각과 법리적용의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수사 중간에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알력설이 공공연히 터져 나오고, 피의사실들은 여과 없이 흘러나왔다.
수사결과가 발표도 되기 전에 여론은 이리 저리 춤을 췄고 덩달아 검찰의 최종 판단도 오락가락했다. 국회 대정부질문과정에서 법무장관에 대한 추궁이 있었고,
야권은 법무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채택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일부 야당 의원은 지난 대선의 정통성과 박근혜 대통령의 정당성을 문제 삼고 있다. 심지어 어느 진보논객은 박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당초 검찰은 결코 좌고우면할 이유가 없었다. 정권의 심기를 살필 이유도 야권이나 진보적 시민단체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굳이 구속이냐 불구속이냐를 두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드러난 증거에 의거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 처리하면 그만이다. 정치적 고려는 금물이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한쪽은 불만하고 비난하기 마련이다.
이번 '국가정보원 정치ㆍ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서 검찰은 '죽도 밥도 아닌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무한하다. 검찰이 바로 서야 국가가 바로 선다. 이번의 큰 진통이 검찰이 거듭 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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