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또 다른 전쟁 성폭력 피해자 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프리카 내전과 베트남전에서 희생된 피해자들을 돕겠다고 직접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1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7), 길원옥(84) 할머니의 뜻에 따라 조성한 '나비기금' 중 베트남인 은구옌 반 루엉(43), 은구옌 티 김(여·43)씨에게 각각 6,000달러(660만원)와 4,000(440만원)달러를 전했다고 밝혔다. 루엉씨와 김씨는 베트남전 당시 파병됐던 한국군이 생부이다. 하지만 강제 성폭행에 의한 출생이었다.
이들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닿기까지는 한국·베트남 시민연대의 역할이 컸다.
이 단체가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군 성폭행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조사한 결과 대부분 (정상적인) 결혼을 하지 못한 채 혼자 자식을 키운 경우가 많았고 2세들 역시 교육·소득 수준이 평균을 밑돌았다. 일용직 노동자나 거리 행상 등 직업도 일정치 않았다.
한 관계자는 "루엉씨의 어머니는 한국군 장교에게 성폭행 당했고 2년간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김씨는 아버지 성을 따라 지은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일용직 새우잡이로 일했던 루엉씨는 정대협의 지원으로 30년간 밭을 빌려 농사를 지을 계획이며, 하노이에 사는 김씨는 건물을 빌려 상점을 열 생각을 갖고 있다.
앞서 지난해 3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받게 될 법적 배상금을 전쟁성폭력 피해자 돕기에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배상에 응하지 않자 우선 할머니들의 뜻을 따르는 시민 기부금으로 나비기금을 마련했다. 가수 이효리씨가 첫 추진위원으로 500만원을 기부한 데 이어 지금까지 단체 300여 곳과 개인이 참여한 결과 7,000만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13세에 위안부로 끌려갔던 길원옥 할머니는 "내가 아파 봤기 때문에 같은 고통을 당한 여성들이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다"며 "작은 도움이나마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금의 의미를 설명했다.
정대협은 이와 함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내전 중 강간 피해를 입고서도 다른 피해자와 어린이를 돕는 레베카 마시카 카츄바씨를 지난해 첫 지원 대상자로 선정해 매달 500달러의 활동비를 보내고 있다.
정대협 관계자는 "할머니들의 꿈은 평화"라면서 "그 뜻이 잘 전해질 수 있게 필요한 부분에 기금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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