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발가락양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발가락양말

입력
2013.06.16 23:35
0 0

며칠 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치가 지망생 OOO’이라는 청년으로부터 전단지를 받았다. 국회의사당 앞은 각종 요구와 주장, 시위가 항상 넘치는 곳이다. 그가 준 전단지에는 정치인이 되면 실현하겠다는 공약 몇 가지가 나열돼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군인들에게 발가락양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군인들에게 발가락양말이 왜 필요한데? 나는 그런 경험이 없지만 군대 가서 멀쩡하던 발에 무좀 걸렸다는 경우가 많다. 양말을 신고 있는 시간이 긴 데다 자주 씻지 못해 그럴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양말을 훔쳐가는 바람에 양말을 신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과 양말을 같이 신다가 무좀에 걸린 경우도 있다. 그래서 군대 시절이라면 무좀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발가락 양말은 요즘처럼 더운 때에 신으면 좋다. 면양말이 발 건강에 좋다지만 그것보다 발가락양말이 더 가볍고 시원하다. 더욱이 발을 항상 청결하고 건강하게 잘 챙겨야 하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의사들은 발가락양말을 신을 것을 권하곤 한다.

그러나 볼품이 없거나 좀 징그럽다. 색깔마저 파랗거나 빨간 발가락양말을 신은 사람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특히 여성들은 발가락양말을 신은 남자들을 꼴불견이라고 생각한다. 패션 전문쇼핑몰 아이스타일24가 SNS(소셜네트워크)를 통해 5월 20~23일 나흘 동안 ‘지적해 주고 싶은 남성 동료의 패션 테러는?’이라는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 발가락양말이 27%로 1위였다.

여성들은 그 다음으로 속이 비치는 셔츠, 스키니진, 깊게 파인 브이넥 티셔츠, 은갈치 정장, 이런 것들을 싫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발가락양말의 경우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었을 때가 최악의 패션코디라는 것이다.

다음은 아는 사람이 들려준 에피소드다. 10여 년 전 회사 동료의 아버지가 돌아가셔 문상을 갔을 때라고 한다. 일행 중 대표로 앞에 선 선배가 발가락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발가락양말이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자꾸 발을 오므리고 꼼지락거리는 모습부터가 우스웠다. 엎드려 절을 하는 그를 따라 엎드리면서 겨우 겨우 웃음을 참았다고 한다.

그렇게 절을 하고 있는데 ‘닐리리야 닐리리’ 휴대폰 음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 환상적인 게 아니라 환장적인 이 장면에서 발가락양말의 주인공은 엉거주춤 일어나다 말고 전화를 끄느라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문상객은 물론 심지어 상주까지 웃고 말았다는 이야기.

이렇게 웃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발가락양말 때문에 우는 사람도 있다. 북한의 국경 근처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군화를 벗지 못해 발가락이 붙었다고 한다. 북한전문매체 뉴포커스에 의하면 혼자 탈북한 A씨는 “금강산 부근 전방에서 군복무를 한 아버지의 발가락이 거의 다 붙어 있었다.”고 말했다.

A씨는 한국에 온 이후 발가락양말만 보면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국경지대 군인들은 잠을 잘 때에도 군화를 벗지 못해 A씨의 아버지도 휴가 나왔을 때만 겨우 발을 시원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무좀 예방에 좋고 시원해서 장점이 있는 발가락양말을 우리 군은 왜 장병들에게 지급하지 않는 걸까? 보면 웃음이 나고 모양이 이상해 명령과 위계질서가 서지 않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 벗고 신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신속과 즉각 출동이 생명인 군 조직에서 발가락 때문에 장애가 생기면 안 되겠지.

그런데 그 정치가 지망생의 공약은 언제나 지켜질까? 아니 그는 실제 선거에서 그런 공약을 내세울 수 있을 만큼 정치적으로 성장하려나? 한낮 무더위 속에 전단을 돌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발가락양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이런 양말이 많지만 요즘은 귀찮아서 잘 신지 않는다. 발가락양말 때문에 웃는 사람들 뒤편엔 우는 사람들이 있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