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영(27)씨는 산청 간디학교가 첫 신입생을 받은 1998년 3월 중학교 과정에 입학했다. 이후 고등학교까지 6년간 '간디인'으로 자랐다. 고교시절 담임이던 남호섭 교장의 일기에 그는 이렇게 등장한다. '안 씻기로 유명했고 산만한 것도 같더니 녀석이 점점 멋있어진다(…) 국어 선생이나 역사 선생이 되고 싶다니 그렇게 될 것이다. 그가 선생이 되면 최소한 나보다는 좋은 선생이 될 것이다' 안씨는 정말 국어교사가 됐고, 2010년 간디학교로 돌아왔다. 교정에서 만난 그는 얼핏 학생 같았다.
-어떻게 돌아왔나.
"대학에서 국문학과 종교학을 전공하며 교직을 이수했다. 간디학교는 고향 같은 곳이라 늘 돌아오고 싶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올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런데 옛 선생님한테 연락이 왔다. 이제 대안교육을 경험한 세대가 대안교육을 해야 할 시점이 아니냐는 거였다. 이르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배우다가 가르쳐보니 어떤가.
"배우는 건 쉽다. 받아들일 것만 받아들이면 되니까. 하지만 가르치는 건 다르다. 가르치는 내용에 생명을 실으려면 가르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생태수업 때 아이들을 설득해서 에어컨을 꺼놓고 집에 와서 에어컨을 켤 수는 없지 않나. 가르친 걸 실천하지 못할 때, 그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해시켜야 할 때 미안하다. 그래서 가르치는 일이 어려운 건가 싶다."
-학교는 어떻게 달라졌나.
"초창기에는 빈틈이 많았다. 애들이 수업에 자주 빠진다고 선생님들이 대책회의를 하다 길어져서 선생님들이 수업을 빼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빈틈들을 보고 겪으면서 우린 수업의 중요성을 느끼기도 했다. 한 학기 만에 수업이 없어진 적도 있고, 수업 중에 교실에 물이 차 함께 퍼낸 적도 있다. 요즘에는 그런 일이 없다. 틀도 잡혔고 경험도 쌓였다. 하지만 사랑과 자발성, 비폭력과 불복종이라는 학교철학과 그 철학에 대한 믿음은 여전하다."
-대안학교 출신 교사로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아이들이 처음으로 비를 맞으며 신나게 걸어봤다고 할 때, 바위에 누워서 별을 봤다고 자랑할 때, 그 느낌에 쉽게 공감한다. 나도 같은 길에서 비를 맞았고 같은 바위에 누워봤으니까. 직접 배워서 그런지 자발성의 교육에 대한 믿음도 크다. 지난해 아이들이 수업에 무더기로 빠져서 규제해야 한다는 말들이 있었는데 나는 반대했다. 왜냐하면 나도 수업을 많이 빠졌으니까. 그러면서도 나름 배우는 게 있었고 나중에는 수업을 열심히 듣게 됐으니까.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조금 기다려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3 담임인데 학생들 진로교육은 어떻게.
"졸업생 중 반 이상이 대학에 가고 재수해서 진학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실망도 많이 한다. 올해만도 벌써 2명이 대학을 자퇴했다. 그래서 무작정 대학에 보내는 데 회의를 느낀다. 간디학교 초기에는 여기서 대학 갈 수 있을지 다들 불안해했지만 진학률로 그런 불안은 불식됐다. 이제 대학 안 가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계획 가지고 있나.
"대안학교 전에 대안마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막연하지만 학교 밖 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대안사회라는 게 불가능한 꿈일지 모른다. 하지만 간디학교가 처음 문 열 때도 그랬지만 이렇게 자리잡지 않았나. 마찬가지 아닐까. 대안사회를 만드는 것은 대안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류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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