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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슬계 큰손 한국은행,소장작품 1340점 '그들만의 감상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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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슬계 큰손 한국은행,소장작품 1340점 '그들만의 감상용'인가

입력
2013.06.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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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고가의 미술품 하면 부자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은행 같은 금융기관들도 못지 않은 미술품 애호집단이다. 시중은행들은 주로 자산운용이나 고객 마케팅 차원에서 미술품을 사 들인다. 김승유 전 회장의 미술품 사랑 덕에 4,200여점을 보유 중인 하나은행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저축은행 부실 사태 때는 고객 돈으로 사들여 대주주의 사유물처럼 쓰이던 고가 미술품들이 경매로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비영리기관이자 돈을 찍어내는 발권기관인 한국은행도 국내 미술계의 큰 손 중 하나다. 한은이 소장 중인 미술품은 1,340여점. 한은 소장품을 빼고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논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은의 미술품 사랑은 투자 목적이 아니다. “국내 미술계를 지원하려는 순수한 목적”이란 게 한은의 설명. 하지만 돈을 찍어 사 들인 대다수 작품을 사실상 ‘내부 장식용’으로 쓰고 있어 예산 낭비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은의 미술품 구입은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전란 후 생활고에 시달리는 작가들이 많아지자 돈 있는 기관으로 하여금 이들을 지원케 한 정부 정책 때문이었다. 당시 한은과 같은 임무를 부여 받은 산업은행도 현재 8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작품 구입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한층 활발해졌고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80년대까지 이어졌다. 90년대 들어 정부의 요청이 사라지자 매입 건수도 크게 줄었다. 2008년 5만원권 화폐 도안의 기초가 됐던 신사임당 초상화를 구입한 이후, 2010년 이성태 전 총재의 초상화를 주문 제작한 게 최근 마지막 미술품 구입이었다.

구입 배경이 이렇다 보니 방대한 작품 수에 비해 이른바 ‘훌륭한’ 작품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주로 작가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그림을 사다 보니 나중에 작가가 ‘뜨지’ 않으면 그림값도 함께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은 관계자는 설명했다.

한은은 작년 12월 처음으로 소장 미술품에 대한 공식 감정평가를 실시했다. 되팔 목적이 없던 탓에 굳이 시장가격을 따질 필요가 적었는데 보험 가입을 계획하면서 최소한의 가격 산정이 필요해진 것이다. 장부상 취득액으로 약 39억원이던 미술품들은 작년 시가로 57억9,461만원으로 평가됐다. 평가 당시 불경기로 미술품 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어 5,6년 전의 절반 수준까지 감정가가 떨어졌다.

감정 결과, 1,340여점 가운데 256점이 시장가치가 가장 높은 A급으로 평가 받았다. 붓에 먹물을 슬쩍 스친 듯이 묻혀서 그리는 갈필(渴筆) 기법으로 유명한 청전 이상범의 수묵산수화 ‘야산귀로(野山歸路)’, 천경자의 ‘어군(魚群)’, 조중현의 ‘우중구압(雨中驅鴨)’ 등 명품 한국화는 물론, 김인승의 ‘독서하는 여인’, 심형구의 ‘수변(水邊)’ 등 가치를 인정받는 근대 유화작품도 있다. 1억원이 넘는 작품도 6점이나 된다.

여기에 A급이 될 잠재가치를 지닌 B급 286점, 거래는 되지만 가치가 오르기는 어려운 C급 281점, 아마추어나 지역화단 작품이 대부분인 D급은 520여점으로 분류됐다.

문제는 이런 미술품의 대다수가 한은의 내부 장식용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 일반에 공개하는 것은 1년에 두 차례 서울 남대문로 본점 화폐박물관 내부 소규모 갤러리에서 20여점을 선별해 전시하는 기획전이 전부다. 소장품의 90% 정도는 한은 본점과 전국 지점 건물의 로비나 사무실에 배치돼 있고 10% 정도는 아예 창고(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평소 한은을 찾을 일 없는 일반 국민 입장에선 접근 기회가 사실상 차단돼 있는 셈이다. 반면 다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해외 중앙은행 중 미국의 뉴욕 연방준비은행과 영국 영란은행 등은 아예 전용 박물관과 갤러리를 운영 중일 정도로 소장 예술품 공유에 적극적이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소장 작품 활용도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공감하지만 자체 전시 공간이 협소한데다 소유권과 저작권이 따로인 작품이 대다수여서 외부 전시에 대여하는 것도 일일이 작가나 유족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공개에 제약이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다만 “지역본부에는 일반인이 많이 찾는 객장에 미술품을 집중 배치하고 있고, 외부 대여도 앞으로는 좀 더 활성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7,8월 중 사상 최초의 신진작가 공모를 통해 재능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은 갤러리에 전시하고 일부 작품은 구입할 예정이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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