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어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원 전 원장에 대해서는 공직선거법 제85조(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와 국정원법 제9조(정치관여 금지)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인터넷상에서 정부ㆍ여당을 지지하거나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을 올리도록 지시해 정치와 선거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과잉 충성에서 비롯됐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원 전 원장은 국정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을 대통령의 국정 홍보와 치적 쌓기에 동원했다. 대북임무를 수행해온 심리전단을 독립부서로 만든 뒤 꾸준히 덩치를 키워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4개 팀 70여명으로 늘렸다. 검찰은 "70여명 모두가 댓글 관련 일을 했다"고 밝혔다. 부서장회의에서는 "국정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을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대선을 앞두고는 "올해 잘못 싸우면 국정원은 없어진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국정원을 사설 정보기관처럼 운영한 셈이다.
이번 사태로 국정원은 또다시 얼굴을 들기 어려운 치욕을 당했다. 1999년 국정원으로 이름이 바뀐 이후 9명의 원장 가운데 6명이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앞서 민주화 이후에도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의 정치공작 악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퇴임 국정원장이 번번이 수난을 당한 이유는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의 편의와 안위를 위해 봉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쏘아 올렸을 때 국정원은 위장전술에 눈뜨고 당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피격 때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정원을 정치로부터 독립시켜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측근을 정보기관 수장으로 앉히는 관행에서 벗어나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국정원장이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도록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청와대와 정치권은 국정원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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