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체계 개편을 앞두고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이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기능 중복으로 조직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각자 존재감을 드러내려 안간힘을 쓰는 것인데, 이런 노력으로 차별화가 부각되기는커녕 "역시 중복되는 기관들이란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됐다"는 지적이 더 많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DB산업은행은 최근 ▲첨단융합산업 ▲창조형 지식서비스산업 ▲연구개발(R&D)우수기업 등을 지원하기 위한 3조원 규모의 창조경제 특별자금을 신설했다. 또 정부가 주도할 '성장사다리펀드'(벤처ㆍ중소기업의 창업 성장 회수를 돕는 펀드) 조성에도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비슷한 성격인 지식재산권(IP)담보 대출 상품의 경우 산은이 시중은행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출시해 지금까지 3D음향 시스템 특허 기업, 철도차량 출입문 시스템 특허 기업, 의류업체 상표권 등 3곳에 170억원을 투자했다.
홍기택 KDB금융 회장은 틈만 나면 "정부의 창조경제정책 구현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 "창조금융 상품 출시로 우리나라 신성장동력 확충 및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쏟아내며 산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수출입은행도 최근 중소ㆍ중견기업들을 모아놓고 '창조산업 수출단계별 종합지원안'을 발표했다. IP분야를 포함한 지식서비스, 문화콘텐츠, 첨단융합 산업 등의 창조산업에 '기술개발→상용화→해외시장 개척→수출이행' 등 단계별로 필요한 금융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수은 관계자는 "그간 수은의 금융지원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조선 플랜트 녹색산업처럼 창조산업을 새로운 먹을 거리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MB정부가 녹색산업을 밀 때 앞장서 관련 기업을 지원했듯 새 정부의 벤처 육성 프로젝트에도 적극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지난달부터 보증료 50% 할인 등이 담긴 '창업 수출기업 희망보증 우대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한국정책금융공사는 중소ㆍ벤처기업에 투자하는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 중이다. 기술보증기금은 올해 2,000억원 규모의 신규 보증을 '특허 기술 가치 연계 보증'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경쟁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를 앞세운 상품들을 쏟아내고 있는 이들 정책금융기관들은 '개편 대상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태스크포스(TF)'팀은 당초 7월까지 개편의 윤곽을 마련할 예정이었으나, 신제윤 위원장이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아 밑그림조차 안 그려져 있다"고 토로할 정도로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금융 민영화 등 다른 사안과 달리 정책금융체계 개편작업은 아직까지 뚜렷한 그림이 없다 보니 각 기관들은 '지금 내놓는 결과물에 따라 존폐 여부가 갈릴 수 있다'는 생각에 경쟁적으로 새 정부 코드에 맞춘 상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상품들이 내용면에서 중복되는 게 많아 오히려 창조경제 정책 추진에 혼란만 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편 TF가 가동되는 와중에도 각 기관들이 특정 업무 기능을 보전하기 위해 중구난방 (창조금융 관련) 조직을 만들고 투자를 하고 있다"며 "향후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금융당국이 개편의 시한을 명확히 하고 그때까지 새로운 사업은 자제하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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