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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종교, 미래를 말하다] <11> 천주교 빈민사목위원장 임용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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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종교, 미래를 말하다] <11> 천주교 빈민사목위원장 임용환 신부

입력
2013.06.1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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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6일 바티칸 로마 교황청 바오로 6세홀. 새 교황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교황으로 결정되자)옆에 있던 동료 추기경이 나를 포옹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말라'고 했다. 그 순간 성 프란치스코가 떠올랐다." 그는 프란치스코를 "빈자들의 성인이자 평화의 성인"이라며 교회 역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곳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역대 어느 교황보다도 유난히 청빈한 삶을 강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한 대로 빈자들과 함께 하는 교회를 사반세기 넘게 실천해오는 곳이 있다. 도시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철거민들의 주거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다.

"빈민사목위 활동의 정신은 가까이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황청 회칙에, 더 나아가서는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고 바로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성경과 복음에 근거를 둡니다."

올해로 3년째 빈민사목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용환(49) 신부는 13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내 빈민사목위 사무실에서 "그러기 위해서는 가난한 이들과 같이 살면서 현실을 고민하고 헤쳐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빈민사목위의 출발은 198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해 4월 서울 목동 재개발이 시작되자 강제철거 위기를 맞은 주민들과 뜻 있는 천주교 평신도들이 천주교도시빈민회를 조직해 항거했다. 당시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 빈민운동의 대부로 불린 제정구 전 의원과 예수회 정일우 신부 같은 이들이다. 그 도시빈민회를 토대로 서울대교구에 도시빈민사목위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철거민들의 주거권 보장 운동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요청을 받고 목동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도시빈민사목위를 서울대교구장 자문기구로 두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한참 뒤 도시 빈민만 빈민이냐는 지적을 수용해 '도시'를 떼어내고 지금 이름이 됐다.

임 신부가 빈민운동과 인연이 생긴 것도 천주교도시빈민회 활동가들과 만남이 계기였다. 신학교 재학중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해 서울 금호동에 머물며 빈민운동을 체험한 뒤 사제의 길을 걷더라도 이런 활동을 계속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실제로 재개발지역에 터전을 두고 신부로 활동하기에는 그 이후로 또 몇 년이 흘러야 했다. 우선은 신학교를 마치고 사제 서품을 받아야 했고, 그 뒤에도 군종신부로 활동하거나 빈민지역이 아닌 곳의 성당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그때는 그때 나름으로 보람이 있었지만 "이게 나의 길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옮겨간 곳이 봉천3당 선교본당이다.

"빈민사목위는 초창기에는 철거현장을 지켜주고 먹을 것도 지원하고 같이 기도도 드리는 정도의 활동으로 출발해, 갈수록 싸움이 조직화되면서 각 지역 활동가, 마을주민들과 함께 세입자대책위를 꾸려 조직적인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어요.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철거가 진행된 삼양동, 금호동, 봉천동 등의 중요한 활동 공간이었죠. 천주교는 거기에 활동가들이 모여 회의도 하고 기도도 하는 '공소'(公所ㆍ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성당)을 만들었고 그 공간이 1990년대 후반 삼양동을 시작으로 선교본당으로 바뀌었어요."

도시빈민 주거권 확보 운동은 용산 재개발, 뉴타운 건설 등 개발사업 시행 지역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달동네 판자촌에서 새 아파트 단지로 바뀐 과거 재개발지역이라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임 신부는 "주거권 확보 운동은 임대아파트 건설을 따내는 운동으로 대응 방식을 다변화해 갔고 재개발이 끝난 지역에서는 이제 그 지역을 얼마나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드느냐 하는 공동체 운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재개발 이후 지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생활수준에서 차이나 나는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주민간의 갈등이다. 그가 주임신부를 맡고 있는 금호1가동 선교본당에서도 기존 세입자대책위 주민들과 함께 이 같은 반목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단오제 같은 기존 동네행사를 이어가고 신용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운동도 적극 지원한다.

하지만 재개발 지역 주민들이 진정한 이웃이 되어 어울려 살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임 신부는 말했다. 그 시간은 물질적인 이기주의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알아가기 위해 치러야 할 적잖은 비용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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