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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 무산 이후] '원칙 우선'에 가로막히고 전략 미숙… 북한에 빌미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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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 무산 이후] '원칙 우선'에 가로막히고 전략 미숙… 북한에 빌미만 제공

입력
2013.06.1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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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당국회담이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고 속절없이 무산되면서 비판의 화살이 청와대와 정부로 확대되고 있다. 물론 주된 책임은 북한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측도 5년 동안 신뢰관계가 사실상 단절된 상황에서 대비도 없이 북한을 상대하면서 협상력 부재를 드러내는 등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경직된 대북 접근

정부는 회담을 앞두고 '신뢰'라는 대의명분을 강조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남북관계의 첫 단추를 견실하게 꿰려는 의도에 대해서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절차와 원칙에 얽매이다 보니 융통성이 부족했고, 대북 협상과정의 다양한 돌발상황에 매끄럽게 대응할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경직성은 초반 주도권 잡기 기싸움에서 두드러졌다. 정부는 6일 북한의 당국간 회담 제의 7시간 만에 '장관급' 회담을 역제안해 기선을 잡았고, 북측이 실무접촉 장소로 개성을 제시하자 판문점으로 맞받아치면서 관철시켰다.

잇따라 북한을 몰아세우는데 성공하다보니 정부는 회담에서 어떤 성과를 낼지에 앞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데 주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12일 "북한과 틀어지더라도 본회담에서 치열하게 붙다가 틀어져야 하는데 이처럼 준비과정에서 형식에 얽매여 판이 깨지면서 북한에 빌미만 준 꼴이 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정부의 안보라인이 군 출신 강경파로 채워져 있어 통일부가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청와대와 일부 외교안보라인의 '원칙' 우선주의에 가로막혀 무척 답답함을 호소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협상력 부재

정부는 세부 협상과정에서도 전략적 미숙성을 드러냈다. 6일 장관급 회담을 제안하면서 상대를 지정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데 정부는 "전화통지문 수신자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김 부장이 나와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분명하게 적시하지 않아 논란의 소지를 남겼고 실제 북한은 이 같은 애매함을 최대한 이용한 측면이 강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북측 단장으로 반드시 김 부장이 나와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김양건-류길재' 조합이 아닐 경우 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처음부터 못을 박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정부가 회담 대표의 '격'을 유독 강조하다 보니 과거의 전례를 무시한 측면도 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21차례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우리측은 항상 통일부 장관을 내세운 반면 북측은 내각책임참사라는 임시직책을 내세웠다. 내각책임참사는 우리의 장관과 차관 사이, 아니면 그 보다 아래인 국장급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지만 어쨌든 정부는 이 같은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회담에 임했다.

자극적 언사

회담을 앞두고 상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한 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담 이틀 전인 10일 "장관이 국장과 만나 회담을 할 수는 없다"며 "격이 맞지 않으면 상호 신뢰하기가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국제적 스탠더드'를 강조한 것이지만 이에 응수하듯 북한을 실제로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장을 대표로 내세웠고 회담은 틀어졌다. 외교 소식통은 "남북이 밤샘 실무접촉을 간신히 끝낸 시점에서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본회담을 앞두고 상대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인하기 보다는 관계만 더 껄끄럽게 하는 악수(惡手)가 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6일 대화를 제의하자 청와대가 "인내를 갖고 기다린 국민께 감사드린다"고 마치 자축의 샴페인을 터뜨리듯 언급한 대목도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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