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11일 원세훈(62)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55) 전 서울경찰청장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향후 정치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번 결정은 대선 직전 국정원과 경찰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어서 야권이 ‘지난해 대선이 불공정하게 치러졌다’는 주장을 본격적으로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원 전 원장에게 검찰이 적용한 선거법 제85조 1항은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최대의 쟁점은 원 전 원장이 직위를 이용해 직원들로 하여금 특정 정당이나 대선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게 했느냐 여부였다.
검찰은 사이트 분석을 통해 심리정보국 직원 중 일부가 당시 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 수십 건을 올리고 관련 글에 찬반 투표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중 문 후보가 직접 언급된 글은 1, 2건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고민 끝에 직원들의 행동이 명백한 선거 개입이며 그 배경에는 원 전 원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검찰 내에서는 문제의 댓글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데다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나 관련 진술이 없어 선거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선거법 적용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사팀은 결과적으로 ‘종북세력에 대한 선제적 대응’ 등의 내용이 담긴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가운데 일부가 선거 개입 의도로 읽힐 여지가 있어 원 전 원장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비록 일부 직원만의 문제라 해도 그 책임은 기관의 수장인 원 전 원장이 져야 한다는 논리다. 그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해 온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악습을 끊어야 한다는 의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원 전 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제9조(정치 관여 금지)와 함께 선거법도 적용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다만 정통 공안 검사 출신인 황 장관이 선거법 성립 여부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수사지휘’ 논란이 일면서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실현되지 못했다. 수사지휘권 발동이라는 파국을 막기 위해 수사팀이 먼저 ‘불구속 기소’로 한 발 물러서고, 황 장관도 일주일 간의 장고를 거치기는 했지만 이날 결국 ‘선거법 적용’에 합의하는 절충안이 극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번 기소로 원 전 원장은 역대 국정원장 가운데 선거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 되는 최초 사례가 됐다. 앞서 신건ㆍ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2005년 구속 기소됐지만 불법 도청을 지시 또는 묵인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를 받았다. 김 전 청장의 경우에도, 대선 직전 국정원 여직원 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 지시를 통해 사건을 축소ㆍ은폐함으로써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한 정황이 확보됐기 때문에 선거법 제85조 1항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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