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 피고인의 형량을 결정짓는 '양형 심리'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가를 두고 법원과 검찰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양형 심리는 양형 가중 및 감경 사유, 권고형량 범위 등에 대해 검찰과 피고인 측이 직접 법정에서 의견을 내고 공방을 벌이는 절차로, 3월부터 전국 법원 15개 재판부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다.
11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대검 공판송무부(부장 이건리)는 최근 양형 심리 시범재판부에 배당된 사건의 담당 수사검사에게 '조사보고서'라는 양형조사 결과를 재판부에 내도록 지시했다. 현재 법원은 2009년 법원조직법을 근거로 양형조사관 제도를 도입한 이후, 양형조사관을 통해 피고인 및 피해자 등과 접촉해 조사보고서를 제출 받고 있다. 검찰이 조사보고서를 따로 제출하도록 지시한 것은 이에 대한 일종의 '항의 표시'인 셈이다.
양형조사관이 생기기 전에는 법무부 소속 보호관찰관들이 재판부 요청에 따라 양형조사를 실시해왔다. 그러나 법원은 현재 검찰의 부당한 입김이 닿을 수 있다는 이유로 보호관찰관 활용을 자제하고 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요청하지도 않은 조사보고서를 검찰이 내는 것은 양형 심리를 방해할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검찰은 "법원의 자체적 양형 조사는 사법권 남용"이라고 맞서고 있다.
현재 양측은 법무부가 양형조사관이 구치소에 있는 구속 피고인 접견을 막고 있는 것을 놓고도 대립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법무부의 접견 금지로)양형조사관이 피고인 본인이 아닌, 주위 사람들에게 피고인에 대해 물어봐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했다"며 "구속 피고인 접견을 막는 것은 기관 논리를 앞세운 보복조치"라고 반발했다.
반면 법무부와 대검 관계자는 "양형조사관의 구속 피고인 접견은 형사소송법상 근거가 전혀 없어 허락할 수 없다"며 "세계적으로도 양형조사는 법무부나 검찰의 관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은 양측 모두 인사 적체가 심하자 자릿수를 늘리려고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형사사건 전문인 한 원로 변호사는 "당장 한 기관의 역할을 완전히 없앨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양형조사 자체를 충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며 "기관 간 힘싸움보다 피고인 입장에서 갈등을 풀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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