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할 정도로 침착하고 냉정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반대로 호들갑을 떠는 일도 없다. 플레이가 화려하지도, 장타자도 아니다. 말없이 흔들림 없는 자세로 자신의 플레이에만 집중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퍼팅 솜씨로 타수를 하나씩 줄여갈 뿐이다. 그린에서는 동료들이 붙인 별명대로'침묵의 암살자(Silent Assassin)'가 된다. 세계 1위를 놓고 경쟁하는 미국의 스테이시 루이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박인비(25)의 퍼팅이다.
▲ 골프에 "짧은 퍼팅도 똑같이 한 타"라는 격언이 있다. 이를 가장 잘 증명해 주고 있는 그가 메이저 연속 2승을 포함해 올해 벌써 LPGA 4승을 거뒀다. 홀 당 평균 퍼팅 수 1.704개로 세계 1위인 선수답게 10일 끝난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웨그먼스 챔피언십 연장전 3번째 홀에서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천부적인 거리∙ 방향 감각으로 6미터나 되는 버디 퍼팅을 보란 듯이 성공시키며 우승을 확정했다. 그의 경기는'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 그에 비하면 보름 전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동갑내기 이일희의 생애 첫 LPGA 우승은 소박하다. 날씨가 좋아 12홀 3라운드(원래는 18홀 4라운드)경기를 치르지 않았다면, 몇몇 스타 선수들이 대회취소를 강력히 반대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중계화면에 얼굴 한번 제대로 나오지 않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아웃사이더로 남아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눈물 젖은 빵'을 삼키면서 4년을 버틴 그를 하늘은 외면하지 않았고,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 이일희는 '감탄'을 주지 못했다. 박인비처럼 퍼팅이 절묘하지도, 특별한 개성을 가진 골퍼도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우승의 비결인 탄탄한 자세와 스윙이 있었다. 그것이 호텔비가 없어 혼자 민박집을 전전하고, 비행기는 이코노미석만 타고, 실력 있는 캐디조차 쓸 수 없었던 그의 서러운 세월과 어우러져 감동을 자아냈다.'감탄'은 실력만으로도 가능하지만,'감동'은 스토리텔링까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스포츠의 감동을 더 좋아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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