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9일 오후 9시쯤 경북 경주시 보덕동 보불로 삼거리. 경찰 사이드카와 교통순찰차가 3대씩 나타나더니 10명의 경찰관이 내려 차로 통제용 라바콘을 세워 1, 2차로를 막았다. 이곳은 불국사와 보문관광단지, 감포 양남 양북 등 경주 동해안에서 경주시내나 고속도로를 이용하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교통의 요지여서 음주단속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이다.
같은 시각 경주경찰서 22개 파출소별로 목지점을 장악하고 골목으로 도주하는 음주운전자들을 추격하는 등 투망식 단속이 벌어졌다.
경주경찰서가 음주운전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음주운전 단속은 전국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 동안 경주는 관광지라는 이유로 다소 느슨했던 것이 사실. 경찰은 음주운전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가 결국 음주사고를 불러오고, 관광도시 경주의 이미지를 깎아 내린다고 보고 칼을 뽑아 든 것이다.
출근 전날인데다 음주단속 사실이 알려져서 인지 1시간여가 흐르도록 주취 차량은 나타나지 않았다. 경주경찰서 조종국 사이드카 반장은 "음주단속 시간으로 이르기도 하지만 강력한 단속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며 "이렇게 해도 걸리는 사람은 걸린다"고 말했다.
아니나다를까, 석장도 부흥마을 입구와 건천읍, 구정동 등에서 음주운전차량을 적발했다는 소식이 무전기를 통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자정쯤 음주단속이 한창인 불국사 입구에서도 혀가 돌아간 음주운전자와 단속 경찰관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모습이 목격됐다. 음주운전자는 "제사를 모시고 음복주 한 잔도 못하냐"며 핑계를 댔다. 음주단속 현장에서 제사 음복주와 상가집 문상형 변명은 읍소형의 단골메뉴. 경찰이 넘어갈 리 없다. 음주측정을 거부하면 엄한 처벌을 받는다며 설득한 끝에 측정한 혈중알콜농도는 0.1% 이상으로 면허취소 수준. 차량을 안전지대로 옮기고 택시로 귀가시켰다.
때로는 읍소하다 안 되면 "내가 감히 누군데"라며 거들먹거리는 주취자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멀리서 경광등을 보고 차를 돌려 도주하는 음주차량을 막기 위해 미리 도주로를 차단하는 어항식 단속으로, 경주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걸리면 절대 빠져 나가지 못한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한 단속 경찰관은 "음주단속을 하다 보면 웃지 못할 사연도 많고, 인간적으로 봐 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사연도 있다"며 "하지만 음주운전은 자신뿐 아니라 남을 해치는 살인행위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일 새벽까지 3일간 음주단속에 걸린 운전자는 20명. 무면허운전자도 있었다.
김상직 경주경찰서 교통경비계장은 "지역 전역에 음주운전 근절 플래카드와 포스터가 내걸려 있지만 줄지 않고 있다"며 "관광도시라고 해서 '봐주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형섭 경주경찰서 경비교통과장
"음주운전 없는 그날이 진정한 국제관광도시의 완성"
김성웅기자
"음주운전이 근절되는 그 날이 진정한 국제관광도시의 완성입니다."
김형섭(47‧사진) 경주경찰서 경비교통과장은 "최근 경주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교통사망사고의 50%가 음주운전 때문"이라며 "산발적인 단속에서 벗어나 경주 전역에서 평일 주말 상관없이 무기한 실시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음주운전 근절은 전국 어디서나 중요하지만, 관광도시 경주를 위해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관광도시이다 보니 운전자들이 다소 느슨해진 측면이 없지 않다"며 "일부 상인과 운전자들의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음주운전 근절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모처럼 경주나들이 끝에 음주단속에 걸리는 불상사를 막고 운전자들의 불쾌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플래카드 등으로 경주의 음주운전 단속 사실을 널리 알리고, 단속 경찰관에 대한 소양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승용차는 물론 관광버스와 다른 사업용 차량에 대해서도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며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음주운전이 늘 우려가 있는데, 단속과 홍보를 병행해 음주운전 없는 천년고도 경주 만들기 프로젝트를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김성웅기자 ks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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