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인터넷기업을 통해 국내외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미국 정부의 비밀 프로그램 프리즘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영국, 독일, 호주, 뉴질랜드 등 미국 우방국들도 연루 의혹에 휩싸였다. 이들 국가의 정부가 미국의 정보 수집에 협조한 뒤 첩보 내용을 제공받는 방식으로 국내법에 금지된 자국민을 사찰했다는 것이다.
감청 담당 정부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가 프리즘에 직접 접속해 정보를 수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영국은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이 미국 방문 일정까지 미루고 해명에 나섰다. 헤이그는 9일 BBC방송에 출연해 “GCHQ가 법을 회피하려 다른 나라 정부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 정부가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했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양국은 2차대전 이후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며 “법을 준수하는 영국인이라면 이번 일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했다. 헤이그는 10일 의회에 출석해 관련 의혹을 해명했다.
뉴질랜드에서는 불법도청 피해자인 유명 인터넷사업가 킴 닷컴이 뉴질랜드와 미국의 정보공유 의혹을 제기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 독일 국적자인 킴 닷컴은 세계 최대 파일공유사이트 메가업로드를 설립했다가 저작권 침해 혐의로 미국 당국에 기소된 인물이다. 미국 이송을 거부하며 재판을 진행 중인 그는 정보기관이 자신의 통화내용을 도청해왔다고 주장했고 뉴질랜드 정부는 최근 이 사실을 시인했다. 킴 닷컴은 프리즘 관련 보도가 나오자 “미국 정보기관이 내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했기 때문에 뉴질랜드 당국이 첩보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9일 “정보 관련 사안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9월 총선에서 집권이 확실시되는 호주 보수당은 “프리즘에 의한 호주 국민의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녹색당은 “호주 정보기관이 미국의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있다”며 정부 해명을 요구했다. 밥 카 외무장관은 9일 이에 대한 즉답을 피하며 “(프리즘이) 호주 국민의 프라이버시에 미친 영향을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테러 및 범죄 방지를 위해 통신사와 인터넷회사로부터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받는 법안을 추진하던 호주 정부의 노력이 이번 사태로 좌초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독일 정치권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이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독일인 사찰 의혹에 대한 해명을 받을 것을 요구했다. 마스 오페르만 사회민주당 의원은 “미국이 테러리스트를 감시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독일 시민 전체를 감시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다음달 시작하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이번 사태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네스 슈보보다 유럽의회 의원은 “사생활 보호는 유럽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확실한 보증이 없다면 FTA 협상은 큰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h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