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될 사람으로서 기사를 읽다 보면 많은 것을 공감할 수 있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과학 잡지를 펼쳐 보았을 것이다. 과학 잡지에 나와 있는 연구가 과연 한 분야에만 국한되어 있는가? 어느 특정 분야에만 국한되어 있는 연구결과를 물론 볼 수 있지만, 다수의 연구에서 다양한 분야가 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사를 읽기 전, 다수의 연구에 다양한 분야가 융합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에서의 융합은 과학과 과학, 과학과 기술의 융합이다. 과연 융합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융합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하여지거나 그렇게 만듦'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다른 종류의 것' 이다. 과학과 과학의 융합이 아닌 것 중에 찾아볼 수 있는 예로써 '적정기술' 이 있다. 적정기술은 현대기술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기술로 라이프스트로(Life straw), 큐드럼(Q Drum), 항아리냉장고(Pot-in-Pot-cooler)가 있다. 라이프스트로는 오염된 물을 정화시켜 먹게 만들 수 있는 휴대용 정수기, 큐드럼은 많은 양의 물을 굴려 운반할 수 있는 드럼, 항아리냉장고는 항아리 물 모래만으로 저렴하게 만든 간이 냉장고이다. 이 적정기술에는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 상위 10%가 아닌 하위 90%를 위한 디자인을 만들자는 과학자의 철학과 과학이 융합되어 있다. 과학과 철학의 융합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과학과 과학의 융합은 상위 10%를 위한 과학이며 어떠한 철학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아쉽다. 과학과 과학의 융합이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융합이든 간에 철학이 들어가야 한다. 대표적으로 과학은 윤리라는 철학 아래에서 연구, 융합되어야 한다. 그 예로써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원리인 핵분열이 있다. 우리들은 핵분열이 윤리 아래 놓이지 않았을 때의 참상을 잘 알고 있다. 과학 아래에 철학이 없을 때, 간디가 말했던 '인간성 없는 과학'이 현실화되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돌'을 가지고 싸울 것이다. 이러한 광경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고급 기술들은 90%를 위한 기술이 아니다. 이 기술의 개발 목적은 10%의 승리에 대한 욕구이기 때문이다. 90%에게는 사람과 사람들끼리 싸우는 전쟁 기술이 아니라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척박한 환경과의 전쟁에서 싸우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과 과학의 융합보다 과학과 철학의 융합이 더 효율적이고 더 윤리적이다.
이제 융합을 과학적 측면이 아닌 다방면적 측면에서 보자. 정치와 철학 융합의 대표적 사례에 한글이 있다.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1443년 제작, 1446년 반포한 우리나라의 고유 문자이다. 한글에는 정치적 철학인 애민정신, 자주정신, 그리고 실용정신이 융합되어 있다. 이 세 가지 정치철학적 융합은 모든 백성에게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평등을 주었고, 그 평등은 신분사회였던 조선에 민주주의의 싹을 심었다. 또한 한글은 쉽게 배울 수 있어서 한문 대신 읽고 쓸 수 있는 말을 제공해준 복지의 도구였다. 500년 전에도 정치와 철학의 융합이 사회 안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정치와 철학의 융합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옆에서 특정 분야가 철학과 융합해서 해를 준 것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철학과의 융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철학이 결여되어 있는 기술들에 철학을 결부시키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임성재 전북사대부고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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