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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드라마 '나는 나의 아내다'서 1인35역 열연 남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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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드라마 '나는 나의 아내다'서 1인35역 열연 남명렬

입력
2013.06.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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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되고 30분쯤 지나서 한 명 나갔고 30분 뒤에 또 한 사람 일어섰다. 무대 위의 배우는 그걸 봤을까. 봤댄다.

"동성애 거부감? 아닐 거야. 재미 없으니까 나갔겠지. 돈 내고 객석에 앉은 관객은 그럴 권리가 있어. 외국에선 아예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나간대. '너희들, 연극을 이따위로밖에 못 해!' 그런 항의의 표시지. 근데 돈도 안 내고 (초대권 받아) 들어온 놈이 그랬다면, 그건 아주 싸가지 없는 놈이지."

실존했던 독일의 크로스드레서(cross-dresserㆍ이성의 옷을 입는 사람) 샤롯데 폰 말스도르프(1928~2002)의 삶을 모노드라마로 만든 '나는 나의 아내다'를 배우 남명렬(54)이 연기한다. 전업 25년차 배우의 첫 번째 모노드라마다. 본인은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며 빼지만 지적인 배우로 소문난 그가, 전체주의 사회의 성적 소수자라는 진중한 소재의 작품을 골랐다. 그래서 호모섹슈얼에 대해 뭣 좀 투실투실한 얘기를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연극으로서"의 테두리를 넘지 않았다.

"모노드라마, 사실 난 좋아하지 않아. 배우가 말랑말랑 제 재주만 자랑하는 것 같고, 또 연극이 개인의 희로애락에 갇히는 것 같아서. 난 흐르는 역사 속에 들어 있는 인간의 부침, 역사와 인간의 만남에 매력을 느껴. 장예모 영화 '인생' 같은 스토리 말야. 샤롯데가 꼭 그런 인물이잖아. 그래서 해보기로 한 거지. 동성애에 관심이 많았거나, 많아졌다거나 그렇진 않아. 동성애자라는 인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배우로서 내 관심사지."

뉴욕 브로드웨이의 극작가 더그 라이트(실제 이 작품을 쓴 극작가의 이름)가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게이"인 샤롯데를 인터뷰하면서 나치, 그리고 냉전 시대 동독 치하를 살아낸 소수자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이 이 연극의 얼개다. 샤롯데는 '그륀더자이트(Gründerzeitㆍ창설의 시대)'로 불리는 1890년대의 문화적 가치를 알고 보존한 공로로 독일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엔 한 인간의 삶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두께의 과거가 있다. 진주 목걸이를 두른 검은색 드레스의 납작한 가슴팍 안에 전쟁과 죽음, 타협과 배신, 소외와 냉소의 세월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더그, 샤롯데, 그리고 샤롯데의 연인 알프레드를 포함해 35인을 혼자서 연기하는 모노드라마다. 똑 같은 무대에서 똑 같은 의상을 입고 순식간에, 제스처와 표정과 목소리의 톤 만으로 역할을 바꾼다. 맨얼굴로 하는 변검(變瞼). 대사의 양도 많다. 힘들지 않았을까. 짙은 눈썹과 일자로 다문 입술이 천상 리얼리즘의 윤곽선을 현현하고 있는 이 배우의 얼굴에, 다시 즉발적인 익살이 번졌다. 가벼운 위악이 느껴지는 능글맞은 유머가 남명렬의 화법인 듯했다.

"어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때려 죽인다 그래도 안 하는 건데. 외롭…더라고. 연습하는데 연출, 조연출 빼니까 나 하나야. 액션, 리액션 혼자 다 하고 있다는 사실이 힘들었어. 자, 연습 합시다 그러면 우르르르… 그게 연극인데. 안 그래?"

중견과 원로 사이의 어디쯤 있는 배우인데도 남명렬의 인터뷰엔 아직 영업사원이었던 그의 과거 얘기가 감초처럼 등장한다. 무대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인생은 대중 앞에 여적 낯설 수밖에 없다는 게, 여전히 한국 연극판의 현실이라는 방증일 테다. 일터인 대학로 근처에 있는 돈암동 한신아파트에 사는 '꿈'을 기어이 이뤘다는 그에게, 한국연극협회 부회장이라는 그의 벼슬(?)을 핑계 삼아 연극인으로서의 생활을 물어봤다.

"품위 유지? 연극만으로는 절대 안 돼. 연극 한 편 제작비가 많아야 오천이야. 평균 잡아 삼천만원짜리라고 치자. 대관료, 연출료 다 포함된 돈이야. 내 몫으로 얼마 달라고 할 수 있을까? 일급 배우라야 10%야. 그리고 배우 한 사람이 맥시멈 할 수 있는 게 일 년에 네 작품이고. 자, 산수를 해봐."

소재와 형식과, 그리고 재미없을 거라는 편견을 듬뿍 안겨주는 이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아내다'는 꽤 재미있다. 뒤로 갈수록 그렇다. 이 작품을 보다가 중간도 못 채우고 일어서는 것은 "싸가지 없는"보다 "바보 같은" 짓에 가까울 것이다. 두산인문극장 '빅 히스토리' 시리즈 마지막 작품. 연출 강량원. 29일까지 두산아트센터. 11일부터는 남명렬과 지현준이 교대로 출연한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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