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동안 세계대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당분간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국제 환경이 우리가 국가 경제와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30여년 전 개혁개방 정책을 설명하며 강조했다는 말이다. 전쟁 준비에 국력을 허비하기 보단 성장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덩샤오핑의 판단에는 핵 무기 개발 성공과 1979년 이뤄진 미국과의 수교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때는 이 판단이 '중요한 전략적 기회의 시기'라는 개념으로 정리됐다. 21세기의 첫 20년이 도래할 때까지 '샤오캉(小康)사회'를 전면 실현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설정됐다. 샤오캉사회란 보통 사람도 풍요롭게 사는 세상으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방면에서 모두 만족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인 중국에서 이러한 선대의 목표는 당연히 후대가 이뤄야 할 과제다. 실제로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3월 취임하면서 2020년까지 샤오캉사회의 실현을 위해 분투하겠다고 다짐했다.
중국 외교국방 정책의 목표는 이처럼 '중요한 전략적 기회의 시기'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직도 더 성장해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무엇보다 주변의 안정이 절실하다. 국제 관계에서 분란이 없어야 중국의 발전이 담보될 수 있다. 인민해방군의 장성조차 "전략적 기회의 시기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며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시 주석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신형대국관계'를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신형대국관계란 구형대국관계의 반대말로 이해하면 된다. 구형대국관계에선 늘 대결과 충돌이 있었다. 가깝게는 냉전 시대 미국과 구 소련이 그랬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과 으르렁거리며 싸우길 원하지 않는다. 소련의 몰락을 지켜본 경험도 한몫 했겠지만 지금은 다투기보다 힘을 키울 때라는 게 중국 지도부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갈 길이 먼 중국은 발목이 잡히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미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 된 중국조차 여전히 성장을 위해 자존심을 눌러 가며 국제 정세를 안정시키려고 애 쓰는 모습은 북한에게 시사점이 크다. 한 나라가 전쟁을 준비하며 동시에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평화로운 국제 정세를 유지하며 중국이 발전할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다. 핵 건설과 경제 건설을 병진하겠다며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고 외치는 북한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사실 북한도 이젠 경제에만 매진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의 시기가 왔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주장대로 핵을 가졌다면 앞으로 그 어떤 나라도 북한을 위협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어졌다. 더 이상 국력을 핵 개발에 몽땅 쏟아 부어야 할 명분도 없다. 군부의 요구는 이미 다 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북한도 이 기회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발전을 참조하면 중국보다 더 많은 성과를 더 빨리 만들어낼 수 있다. 반면 위기를 더 조장하고 대치 국면을 더 격화시킬수록 북한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는 남한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국가적 재원을 국방보다 경제를 살리는데 더 쓴다면 한국 경제가 제2의 기적을 만들어내지 못할 이유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싸고 가장 생산성이 높은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을 가진 북한을 활용하는 것만한 창조경제가 어디 있겠는가.
남북한이 오랜만에 만난다. 한반도도 '전략적 기회의 시기'를 열길 기대해 본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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