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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진주 금곡정미소 대표 백관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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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진주 금곡정미소 대표 백관실씨

입력
2013.06.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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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 때부터 밀공장할아버지께서 공부 말려중학교 졸업 후 밀공장서 일해지금은 할아버지가 고마워'우리밀은 맛없다'는 오해정부수매 중단 후 토종밀 고사토종밀 제분 방앗간도 사라져우리밀단체는 금강밀 보급앉은뱅이밀보다 맛 덜해누룩·고추장 등 판로 확장원료곡 요청 쇄도… 물량 달려아직은 수입밀보다 비싸지만더 많이 지으면 싸질 수 있어

6월은 밀이 익어가는 시기.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시에도 나올만큼 흔했던 밀밭은 1984년 정부가 밀 수매를 중단하면서 급격히 줄었다. 1980년의 밀 자급률이 8.4%였다면 1990년의 밀 자급률은 0.05%까지 떨어졌다는 것이 관련기관의 집계. 식생활에서 빵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늘고 있는만큼 밀의 자급률은 중요하다. 게다가 수입밀은 사후 약품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몇 달씩 걸리는 운송기간을 감안해 약품살포는 기본이다. 껍질을 깎아낸다고 해도 과연 어디까지 안전한가는 늘 의문거리이다. 최근에는 미국산 수입밀에 유전자변형작물(GMO)이 포함되어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이래 저래 토종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덕분에 주목받고 있는 것이 토종 앉은뱅이밀. 키가 작고 씨앗이 붉으며 당도가 높은 이 토종밀은 남녘에서 이모작 농사로 농민들에게는 가외소득을, 소비자들에게는 지역 농산물의 건강함을 선사한다.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에 자리잡은 금곡정미소 백관실(63) 대표는 정부의 밀수매가 중단됐을 때 앉은뱅이밀을 수매해서 앉은뱅이밀 농사가 끊어지지 않게 이어준 주인공. 또한 지금까지 토종 밀가루를 제분하는 맷돌식 제분소를 지켜오고 있다. 두문리로 그를 찾았다.

-제분소인데 이름은 왜 정미소인가요?

"옛날부터 밀도 빻고 국수도 뽑고 떡도 하고 쌀도 찧고 보리도 찧고 다 했거든요. 할아버지 때부터 쓰던 이름이라."

-제분 일을 하신 것은 오래됐나요?

"증조 할아버지 때부터 농사도 짓고 정미소를 했습니다. 밀가루를 빻는 게 많아서 밀공장이라 불렀어요. 할아버지가 셋째인데 독립을 하셨고 나중에는 아버지한테 시키셨는데 아버지가 멧돼지한테 물려서 다리를 절었어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보시기에 영 시원찮은 기라. 우리 형제가 3남4녀로 내 위에 누나 하나가 있어요. 내가 장남이지.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다른 형제들은 다 공부를 시키고 요놈은 장손이니까 밀공장을 물려주고 선산도 지켜야 한다면서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를 못 가게 하더라고요. 우리 때 중학교 가는 사람 반도 안됐습니다. 그 당시 중학교 나온 게 요즘 대학교 나온 거보다 훨씬 수가 적습니다. 내가 4대 1 경쟁을 뚫고 고성 배돈에 혜화중학교에 붙었는데 할아버지가 공부를 안 시킨다고 학비를 꼭 서너달 밀려서 줘요. 돈이 있어도 그래요. 그때는 학비를 안 내면 여자 선생님이 출석부로 머리를 팍팍 때립니다. 공부하기 싫게 만드는 거지요. 공부방도 안 만들어 주고 밀공장 일꾼들이랑 같이 자라고 하고 공부한다고 불 켜놓으면 꺼버리고. 그래서 중학교 졸업하고부터 밀공장에서 일했어요. 스물 세살부터는 아버지가 손을 놓으시고 제가 다 맡아서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공부를 말렸습니까?

"초등학교 선생 되어봤자 초등학생 시건(식온: 그 정도 깨달은 사람)이밖에 안되고 중학교 선생 되어봤자 중학생 시건이 밖에 안된다. 면서기 되어봤자 도둑질 한다. 농사가 제일 바른 일이다, 단디(단단히) 해라, 그러셨어요. 아주 못이 박히게 들은 소리예요."

-그래서 농사나 밀공장 일은 할만했습니까?

"제분 일은 힘들었어요. 저 아래 작은 공장을 할 때인데 밀가루가 먼지처럼 눈에 달라붙어서 그냥 쓰러져 자면 눈이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아요. 공부라도 했으면 다른 걸 할 텐데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됐나 한심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밀을 찾는 사람이 많고 점점 늘어나고 여기 저기서 인터뷰한다고 찾아오고. 할아버지가 이렇게 될 줄 알고 내를 시킨 거 같아서 아주 고맙습니다."

-인기가 많아지는 걸 실감합니까?

"작년에 우리가 밀을 120톤을 수매했는데 올해는 200톤을 수매할 계획입니다. 내년에는 300톤까지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할아버지 때는 10톤 정도 했고 내가 맡아서도 50톤 정도 했어요. 5년 전엔가는 80톤을 했다가 우리 밀 인기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40킬로 들이 한 포대당 1만원을 손해보고 소먹이로 팔았던 적도 있어요. 요즘은 전국에서 채종포(씨앗포대)를 달라는 것을 다 못 주고 있으니 놀랍지요."

-수매하는 것은 다 팔리나요?

"팔리는 것을 예상해서 계약재배를 합니다. 40킬로 짜리 채종포 한 포대를 가져가면 25포대가 나옵니다. 거기에 맞煐?주는 거지요. 100킬로를 하겠다면 네 포대, 200킬로를 하겠다면 여덟포대. 여기서 채종포를 가져간 것은 다 사들입니다. 직접 지어서 가져오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다른 밀은 섞이지 않았는지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앉은뱅이밀만 한 이유가 있습니까?

"농사짓기 제일 수월하고 병충해도 없고, 맛있고."

-앉은뱅이밀은 어떤 점이 다른 밀과 다릅니까?

"앉은뱅이밀은 우선 키가 작습니다. 60~80센티만 자라기 때문에 비에도 잘 넘어지지 않아요. 껍질이 얇고 황토색입니다. 그래서 밀가루를 빻으면 붉은 기가 돕니다. 성분상으로는 글루테인이 적은 대신 찰지고 당도가 높아서 맛이 아주 구수합니다. 전이나 칼국수 수세비 같은, 우리 밥상에 오르는 음식으로는 앉은뱅이밀만한 것이 없습니다."

-한동안은 어려움을 겪었다고요.

"정부에서 1984년에 밀수매를 중단했습니다. 그러니까 수입밀이 많이 들어왔어요. 수입밀이 들어오면서 앉은뱅이밀 같은 토종밀을 가는 방앗간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앉은뱅이밀은 찰지기 때문에 제분기도 전통적인 맷돌식을 써야 하거든요. 대형 제분공장은 전부 수입밀에 맞게 제분기를 운영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밀을 살리겠다고 (1991년에) 시작한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도 토종 앉은뱅이밀을 살린 게 아니라 수입밀과 비슷한 종류인 금강밀을 보급을 했어요. 그래야 밀가루를 만들기가 편하니까요. 금강밀은 원래 보리밀이라고 불리던 건데 껍질이 두껍고 희어요. 공장에서 가공하기는 좋지요. 생산도 많이 됩니다. 빵 만들기도 좋고요. 그런데 이건 껍질이 두꺼워서 밀가루는 앉은뱅이밀만 안 나옵니다. 그래도 우리밀 살리기 하는 단체가 금강밀만 받으니까 그걸로 농민들이 다 간 겁니다. 우리 음식에 어울리는 맛은 앉은뱅이밀보다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밀은 맛이 없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겁니다. 덩달아 앉은뱅이밀까지 맛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덜 팔리게 되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도 그냥 토종우리밀이라고 불렀지 앉은뱅이밀이라고 따로 부르지 않았거든요. 지금도 그 이름이 안 좋다는 분도 있어서 아직도 포장지에는 '진주토종우리밀'이라고 씁니다. 우리 밀이 맛이 없다는 생각을 바로잡느라 굉장히 힘이 들었습니다. 우리밀살리기를 위해 농협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밀 수매를 시작했지만 앉은뱅이밀은 붉으니까 안 받아줬고요. 하는 수 없이 앉은뱅이밀은 앉은뱅이밀끼리만 판로를 찾아야 했습니다. 정부 수매 없어지니까 재배를 안 하고 재배를 안 하니까 정미소마다 제분기를 다 없앴어요. 그러니까 집에서 먹을 것만 재배를 하는 사람들 걸 받아줄 데가 없는 거에요. 이게 맛있으니까 형제 친척이랑 나눠먹으려고 조금씩 농사짓는 농부는 많았거든요. 여기서 고개만 넘으면 사천이에요. 몇 개 시군에 제분 공장이 다 없어지고 요거 하나만 남았으니까 앉은뱅이밀은 다 이리로 왔어요. 추석 설 명절 쇠러 온 사람들이 토종밀을 많이 사갔어요. 그때는 택배가 없을 때라 명절이면 아파트 부녀회 주문을 다 받아서 한 차 싣고 갔어요. 그 덕분에 앉은뱅이밀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정부가 안 하는 밀가루 수매를 금곡정미소가 하면서 앉은뱅이밀을 살렸다고요.

"농민들한테야 누가 돈을 주든 무슨 상관입니까? 사주기만 하면 되지. 정부가 사주나 개인이 사주나 사주기만 하면 농사를 짓습니다. 전국에서 앉은뱅이 밀가루는 전부 우리 정미소로 사러 오니까 제가 농사짓는 사람들 것은 사주고, 또 여름에는 앉은뱅이밀 채종포를 팔고 그랬습니다."

-밀농사는 어떻게 짓나요? 손이 많이 가지는 않나요?

"보통 10월 25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흘 동안 심습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안 해도 됩니다. 보리는 밟아준다지만 밀은 그것도 안해요. 3월에 복합비료 한번은 줍니다. 안 줘도 되지만 아무래도 자라는 게 시원치 않으니까. 농약은 한번도 안 칩니다. 6월 10일이면 타작을 해서 사나흘 정도 말린 뒤 빻습니다. 6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두 달이 제일 바쁩니다. 이때 밀가루를 80% 이상을 팔아야 합니다. 밀가루 음식이 국수나 수제비니까 추울 때 먹을 거 같지요? 아닙니다. 한국사람은 더울 때 밀가루를 먹어요. 이마 땀이 식으면, 찬바람 불면 밀가루를 안 먹어요. 그게 희한한 일이라요. 그래서 그 뒤는 20% 밖에 안 팔려요. 앉은뱅이밀은 진주 고성 함안 여기가 제일 주산지라요. 여기는 밀 갈고 모를 심으면 되니까 2모작이 됩니다."

-주로 판로는 도시의 가정집들인가요?

"작년까지는 그랬습니다. 택배가 자리잡으면서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우리 작목반이 판로를 찾아 이런 저런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알고 보니까 진주에 진주곡자라고, 전국 3대 누룩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우리도 그걸 몰랐고 그 집도 진주에 이런 토종밀이 있는 줄 몰랐답니다. 작년 가을에 거기 대표되는 분이 여기 와맒챨?앉은뱅이밀로 누룩을 만들어보더니 아주 좋다고 해요. 누룩도 잘 뜨고 술을 담아보니까 향이 좋고. 작년 11월부터 이 밀만 가져가요. 올해는 50톤을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올해 우리가 200톤을 수매해도 소비자한테 파는 것은 겨우 30톤 늘어난 겁니다. 그리고 파주의 적성시골된장이 앉은뱅이밀로 고추장을 담아서 이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합천의 전통음식연구회, 전북의 함씨네토종콩 같은 곳에서 앉은뱅이밀과 어울리는 음식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서울의 도시농부에서 판매하고요. 그리고 작은 빵집들에서 많이 찾습니다. 유럽식 고급빵을 만드는 데는 이게 좋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릅니다. 아이쿱이나 한살림에서도 원료곡을 요청하지만 아직은 그만한 양이 없어요."

-이걸로도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으로 구분돼 나오나요?

"우리는 그런 거는 못하고 그냥 통밀과 백밀, 그렇게 두 가지로만 만듭니다. 처음에는 백밀로만 만들었는데 빵 만드는 분들이 밀기울과 백밀을 섞어서 써보더니 좋다고 해서 이제는 통밀가루를 생산합니다."

-채종포는 직접 키워서 만드는 것이지요?

"2만평 정도 농사를 직접 짓습니다. 혹시나 다른 씨앗이 날라왔으면 가위로 잘라버려요. 앉은뱅이밀은 키가 작으니까 큰 거만 자르면 됩니다."

-이제는 그냥 쭉 가는 일만 남은 건가요?

"이게 수입밀과 비교하면 가격이 아직 비쌉니다. 더 많이 지으면 더 싸질 수 있습니다. 모내기하고 심어놓으면 손 안대고 알아서 자라니까 농부들한테 진짜 좋은 농산물입니다. 많이 지으면 가격도 떨어지고 농약 걱정 없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공무원들이 와보고는 이거는 병충해에 죽지도 않고 희한하네, 그러고는 갑니다. 희한하네 말만 하지 말고 더 널리 보급하는 방법을 좀 고민해야 세금으로 월급받는 사람이 할 일 아닙니까?"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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