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9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1,000여 명의 연세대 학생들을 향해 경찰의 최루탄이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시위 현장에서 당시 경영학과 2학년이던 고(故) 이한열 열사가 날아오는 최루탄을 머리에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다. 친구가 뒤에서 부축했지만 축 늘어진 채 피를 흘리는 그의 모습은 한 외신기자의 사진을 통해 500만명의 시민이 참가한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한열 열사가 마지막 순간에 입고 있던 옷가지 등은 26년동안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이한열기념관에 전시돼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보존하는 문제를 놓고 이한열열사기념사업회가 고민에 빠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상은 심해지고, 이를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는 데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 열사가 당시 입고 있던 학교 이름(YONSEI)이 새겨진 파란색 티셔츠와 러닝셔츠는 선명했던 혈흔이 색이 바랜 채 얼룩져 있고, 한 짝만 남은 운동화 밑바닥은 절반 이상이 부스러졌다. 연세대가 지난해 이 열사 사망 25주기를 맞아 전시회를 열면서 사료의 전문 보존처리를 약속했지만 항온ㆍ항습 시설이 없으면 추가 손상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박물관 이원규 학예사는 "땀과 피, 최루가스, 응급약품 등으로 이미 손상된 옷이기 때문에 원형을 복원하긴 어렵다"며 "더 이상의 변형을 막으려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보존 환경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항온ㆍ항습 시설을 갖추기 위한 기금 모금을 7월부터 진행할 계획이라고 9일 밝혔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다양한 경로로 기금을 모금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전 이 열사를 아꼈던 대학 1년 선배 이경란 이한열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6월 민주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희롱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며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한열이와 다른 여러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고 덧붙였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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