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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의 '3대 걸작' 한자리… 감동이 온다,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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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의 '3대 걸작' 한자리… 감동이 온다, 가슴이 뛴다

입력
2013.06.07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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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1848~1903)이 한국을 찾는다. 국내 최초의 고갱 회고전인 '낙원을 그리는 화가 고갱 그 이후'가 이달 한국일보 주최로 14일부터 9월 2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열린다.

고갱은 인상주의로 출발해 상징주의, 종합주의라는 새로운 회화 기법을 통해 스스로 인상주의에 종말을 고한 화가. 문명을 버리고 남태평양 타히티섬으로 이주해 원주민들의 원시적 삶을 화폭에 옮긴 것으로 유명하지만, 오랜 타국 생활로 인해 함부로 취급되거나 버려진 작품이 많고, 대표작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 전시회가 쉽지 않은 작가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을 비롯해 미국 보스턴미술관, 러시아 푸시킨 국립미술관 등 전 세계 30여 공공미술관에서 대여한 대표작 60여 점을 선보인다. 고갱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설교 후의 환상'(1888), '황색 그리스도'(1889),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1989. 이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를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은 전시이기도 하다.

문명 이전 찾아 떠난 삶

파리의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평범한 생활을 하던 고갱은 30대 중반 증권시장이 폭락하자 전업화가로 나섰다. 마네ㆍ들라크루아ㆍ세잔 등의 작품을 연구하며 스스로 화법을 터득했고, 말라르메ㆍ발레리ㆍ프루스트ㆍ드뷔시 등 당대 최고 지성인들과 교류하며 예술적 안목과 감각을 익혔다.

이번 전시는 고갱의 개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브르타뉴 시기(1874~1890)와 폴리네시아 시기(1891~1903)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도시 생활에 지쳐 브르타뉴의 시골 마을로 간 고갱은 원근법을 없애고 형체와 윤곽을 단순화한 종합주의 기법을 선보이며 서양 회화의 전통과 완전히 단절한다. 이 시기에 그린 '설교 후의 환상'은 베르나르의 '초원 위의 브르타뉴 여인들'(1888)과 함께 종합주의 기틀을 다진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상상과 현실을 결합하는 고갱의 상징주의도 브르타뉴 시절에 나왔다. 브르타뉴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둘러싸고 있는 '황색 그리스도' 가 여기에 해당한다.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1890~1891), '암소가 있는 해변'(1888) 등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타히티 섬에서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 폴리네시아 시기는 고갱의 화풍이 완성된 때다. 산업문명에 염증을 느낀 고갱은 1891년부터 1893년까지, 1895년부터 1901년까지 타히티섬에 머물며 강렬한 색채로 그곳의 원시적 삶을 화폭에 담는데, 이는 피카소 등 젊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마지막 유언으로 여기며 제작한 필생의 걸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를 비롯해 '타히티의 여인들' '파아 이헤이헤'(1898) '세 명의 타히티인'(1899) 등 이 시기의 대표작들을 모았다.

5명의 현대 작가들이 고갱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도 함께 전시해 이해의 폭을 넓힌다. 영화제작자 겸 CF감독 마르코 브람빌라, 프라다의 패션 필름을 제작한 양푸동, 아프리칸 미국 팝아티스트 라샤드 뉴섬, 임영선, 노재운이 고갱을 주제로 작업한 설치, 회화, 비디오아트를 선보인다. 1588-2618.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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