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열 개의 다른 시간대 속 소시민들과 얽히고 설킨 '의문의 여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열 개의 다른 시간대 속 소시민들과 얽히고 설킨 '의문의 여인'

입력
2013.06.07 11:34
0 0

소문으로만 등장하는 주인공 미유키와 평범한 속물들의 악행을 단편집처럼 엮어'작은 惡과 큰 惡의 차이'에 관해 질문하는 '공중그네' 저자 오쿠다의 새 장편소설

스릴러의 형식을 띤 오쿠다 히데오(54)의 새 장편소설 는 구성이 퍽 흥미롭다. 총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장편에서 각각의 장은 마치 독립적으로 씌어진 한 편의 단편소설 같다. 일본의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찌질하면서도 쩨쩨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들이 등장해 하루하루의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는데, 그 세계가 참으로 비루하다.

이 인간 군상을 보라. 중고차 대리점에서 산 자동차가 고장이 나자 이를 핑계로 보상금을 뜯어내려는 집요한 블랙 컨슈머, 시청 공무원에게 뒷돈을 주고 시영 주택에 새치기 입주하려는 문화센터 요리교실의 예비 신부, 허위로 구직 활동 서류를 꾸며 실업 수당을 받고는 파친코에 그 돈을 쏟아 붓는 실직 여성들, 퇴직 공무원을 낙하산으로 재취업시켜 고액 연봉과 관급 공사 수주를 맞바꾸는 영세 건설업자들…. 민원과 청탁과 술수와 계략으로 점철된 이 구태와 구악의 세계에서 그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며, 방관자인 동시에 가담자이다.

열 개의 다른 시간대에 등장하는 이 인간 군상은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거창한 악행을 저지를 주변머리도 안 되는 평범한 속물들이며, 둘째, 베일에 가려진 이 소설의 주인공 이토이 미유키와 아는 사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열 개의 색색 구슬을 꿰는 하나의 팽팽한 줄은 이들의 리얼하고도 유머러스한 수다 속에 소문으로만 등장하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젊은 팜므 파탈, 미유키인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미유키가 누리는 주인공의 지위는 그다지 확고하지가 않다. 미유키가 등장하는 분량 자체가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400쪽이 넘는 소설에서 단 한 번도 그녀는 화자의 발언권을 획득하지 못한다. 다만 각 챕터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의해 소문으로 간단히 재현되거나 이들과 나눈 대화의 일단, 이들의 눈에 비친 모습 등이 간략히 제시될 뿐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미유키의 진심이라든가 내면 같은 것은 조금도 눈치챌 수가 없다. 미유키를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은 마치 카페 한 구석에 앉아 옆자리 일행의 대화를 엿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지독히 현실적인 데 반해, 그 구심점이라 할 미유키는 희미하고도 묘연할 따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외모와 성격, 성적과 행동거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한결같이 평범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는 것, 그가 전문대에 들어가면서부터 극적인 변신을 이뤄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육감적인 몸매와 넘쳐 흐르는 색기로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여성이 되었다는 것, 대학 시절 룸살롱에서 호스티스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것 정도의 풍문이 10편의 작은 이야기 속에서 반복적으로 서술될 뿐이다.

시종 유머와 풍자로 일관하던 소설이 스릴러의 서사를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중반 이후부터. 경찰서장의 전별금 마련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젊은 형사가 미유키의 남자들 중 세 명이 그녀와 함께 살던 중 욕조에서 익사했고, 미유키는 거액의 보험금을 타냈다는 사실을 퍼즐 조각 맞추듯 알아낸 것이다. 소문은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독자는 여자의 행적을 좇아 빠르게 결말을 향해 내달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소문이 리얼리티를 구축하는 이 특이한 소설에서 독자가 최후에 마주치는 것은 작은 악과 큰 악의 차이에 대해 던지는 작가의 의뭉스런 질문이다.

,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는 이번 소설을 발간하면서 일본 출판사 신초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것은 인간에 대한 '성선설'도, '성악설'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해학설"이라고 말했다. 악녀에 대한 소문을 속닥거리면서 악의 크기를 근거로 스스로 자신의 죄를 사하는 이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바로 우리들, 이 하잘것없는 인간들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셈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