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이모(14ㆍ경기 안양)양은 지난달 초 친구와 놀다 새벽에 귀가했다가 부모에게 꾸지람을 듣고 홧김에 박모(14)양과 가출했다. 달랑 10만원만 챙겨 무작정 서울로 온 이들은 잠자리에 돈을 쓸 순 없었다. 이양은 가출 경험이 있던 친구의 말을 들은 기억을 살려 '가출패밀리(가출팸)'를 찾기로 했다. 가출팸은 가출 청소년들이 번 돈을 모아 모텔이나 원룸 등에 함께 사는 것이다.
이양 일행은 PC방에서 10대 친목카페에 가입, '남자만 3명, 여자를 구한다'는 팸 모집글을 보고 연락해 가출 고교생들을 만났다. 문제는 가출팸의 원룸에 짐을 푼 다음날부터였다. 팸장인 H(19)군은 이양에게 "성관계를 해야 진짜 팸"이라며 다가왔다. 놀란 이양이 거절하자 팸장은 온갖 욕설을 하며 손찌검을 해댔다. 조건만남을 시키자는 얘기마저 들은 여학생들은 그날 새벽 몰래 도망쳤다.
최근 가출팸이 폭행, 성매매와 사기 등 10대 범죄의 진원지가 되고 있지만 청소년들을 가출팸으로 이어주는 인터넷 10대 친목카페는 아무런 규제나 단속 없이 성행하고 있다.
6일 유명 포털사이트에 '가출', '10대 팸'으로 검색하자 1,500여개의 10대 친목카페가 나왔다. 회원 수 30만명의 C 친목카페에선 팸 모집글만 수백건이었다. 주로 '팸원을 구한다'는 제목에 카카오톡(카톡) 아이디를 남기는 식이다. 'the***'란 아이디의 게시자는 "각자 돈 벌어 생활비를 모으고 청소도 나눠한다"며 "여자만 받는다"고 적었다. 일부 가출팸들은 사진까지 올려 홍보했다. '가출 관련 게시글은 청소년에 유해해 금한다'는 카페 공지는 무색했다. 아예 '팸 게시판'을 따로 만든 커뮤니티도 있었다. S 커뮤니티에는 2,600여건의 팸 모집글과 함께 악마팸, 도발팸이라는 이름의 팸 목록까지 올라있었다.
이렇게 모인 가출팸은 조직적인 범죄집단이 될 가능성이 크고 특히 여자 청소년들은 성범죄의 피해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쉼터의 운영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을 받아 5개월간 가출청소년 인권현장을 조사한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쉼터가 모범생의 행동양식에 맞춰 설계되면 안 된다"며 "가출 청소년에 걸맞은 자립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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