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경(金海卿)은 시인 겸 소설가 이상(李箱)의 본명이다. 바다와 같이 넓은 곳을 다스리는 고관대작이 되라는 뜻으로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세 살 때 큰아버지의 양자가 된 김해경은 할아버지와 두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지만 동시에 아버지를 거부하는 분열된 자아를 만들었다. '너무 많은 아버지와 너무 많은 나'는 어린 해경에게 질식감을 주었다. 세상에 대한 조소와 냉소적인 자아가 자라났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아버지 타령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였다.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오감도' 시제 2호)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 창백한 얼굴에 봉두난발, 장대 같이 뻗친 수염, 파이프 담배를 문 김해경은 아무렇게나 살고 떠날 것 같은 환자였다. 가부장들이 지어준 이름을 버렸다. 이상이 된 순간 이상(李箱)은 이상(理想)이거나 이상(異常)이거나 이상(以上)이어도 상관이 없었다. 기행을 일삼는 엽기적인 사람이었다. '하나의 나'라는 절대성을 버린 순간 분열된 '하나 이상의 나'의 고통이 차라리 희열이었다. 그는 거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분열된 자신을 인식했다. 거울 속의 나는 실제의 나와는 다른 왼손잡이다. 나와 비슷하지만 뒤집힌 영상으로 악수할 수 없는 불화의, 분열의, 불일치의 관계인 이상이다. 이상은 김해경의 질병을 앓고 그 질병을 노래했다.
문학은 김해경의 진료 기록이었다. 첫 소설 '12월12일'은 가족 욕망의 편집증적 압력에 괴로워하는 내용이다. 장자로서 부모님께 생활비를 충분히 못 드려 고통 받고, 정조가 의심되는 아내의 비밀에 괴로워했다. 현실의 김해경은 소설 '날개' '종생기'에서 일상성의 가치와 규범을 폐쇄시킨 절망과 비극의 내면을 보여준다. 결핵 환자가 치료를 하지 않고 성에 탐닉하는 것은 자살 경향이다. 시 '오감도'는 환자 김해경과 의사 이상의 분열증적 공생관계를 보여준다. '오감도'를 연재했지만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대중을 무시했고 고독과 자만은 굳어졌다. 각혈의 고통이 이어졌다. 일본으로 옮겨가 1937년 사상 불온 혐의로 유치되었다가 병 보석으로 출감하였지만 폐결핵이 악화해 스러졌다. 27세였다.
김해경은 정상적인 생활을 거부했다. 그래도 지근거리에서 소통했던 애인 금홍이나 아내 변동림이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과 상황을 풀어나가는 시선이 간호로 연결될 수는 없었을까? 건강을 지켰다면 이상의 문학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병에 걸린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능력 하나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며 정신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에 고장이 난 것이라고 독일 철학자 가다머는 말했다. 김해경은 귀재 이상의 불멸의 제단에 바쳐진 불쌍한 먹이, 희생자, 제물일 뿐으로 이상과는 낯설기만 하다.
가천대 외래교수, 간호사ㆍ문학박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