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을 만나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한다. 돈이 떨어져도 다른 직업군에 비해 걱정을 덜한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돈이 떨어지면 바다로 나가면 된다고 했다. 바다에는 언제나 물고기가 있기 때문이다. 몸이 건강하고 어로장비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필요하지만 바다를 든든한 저금통장으로 여기고 사는듯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도 그렇다. 비정규직이 불안한 것은 당장의 수입도 정규직보다적지만 일자리 자체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규직은 바다와 같은 저금통장을 가진 이들이다. 마음은 태연하고 지출은 순조롭다. 가장이 정규직인 집안은 그만큼 몸도 마음도 편안할 것이다. 구성원들이 편안하니 가정은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구성원들이 많을수록 국가 전체도 더 안전해진다.
정규직만큼은 아니지만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낫다. 박근혜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든 무엇이든 일자리를 늘리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세계경제가 대전환기를 맞아 성장률이 높아진다고 경제가 살아난다는 보장도 없다. 사람들이 안심하고 돈을 쓰게 해야 경제가 살아나는데 그렇게 만드는 데 안전한 일자리만한 것이 없다. 자산 자체가 아니라 자산을 순환하게 하는 능력, 그것이 국가경제를 좌우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기업을 보는 기준을 재정립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기업을 평가하는 척도는 매출액이나 순익 중심이었다. 고용숫자가 영향을 미쳤지만 그게 전부인 지표는 없다. 그런데 이제부터 순익 대비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용했는지를 산출해서 바람직한 기업을 발표해주면 좋겠다.
금융감독원은 43개 재벌기업이 작년말 기준 121만8,703명을 고용했다고 6일 전자공시했다. 이 수치는 2010년인구센서스에 따른 경제활동인구(15~64세) 3,460만명의 3.5%에 불과하다. 대기업이 주로 고용하는 연령층(25~54세)만 따져봐도 2,410만명의 5%가 채 되지 않는다. 반면 이들이 매출이나 순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0%를 넘어섰다. 훨씬 많이 벌면서 아주 적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준다. 물론 재벌기업으로 인해 먹고 사는 인구를 따지자면 하청에 재하청까지 계속 가지를 치기 때문에 이 숫자만으로 기업의 고용기여도를 따지는 것은 야박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공신력 있는 기관이 대기업의 이익과 고용의 상관관계를 분석해서 진짜 좋은 기업, 더 많은 이들에게 바다같은 태평함을 제공하는 기업을 찾아줬으면 한다.
재벌기업 가운데에서는 삼성그룹이 25만7,047명을 고용해서 가장 많이 고용한 재벌이다. 그 뒤로 현대차그룹(14만7,754명) LG그룹(14만868명) 롯데그룹(8만3,951명) SK(7만7,909명)순이었다. 삼성그룹에서는 다시 삼성전자가 8만9,400명을 고용해서 제일 많았다. 현대차에서는 현대차가 6만116명, LG그룹에서는 LG전자가 3만8,825명을 고용했다.
삼성전자의 작년 순이익은 23조8,452억이다. 현대차는 9조562억이다. 삼성전자가 1명당 2억6672만원의 순이익을 거둔 반면 현대차는 1억5,064만원의 순이익을 냈다. 순이익에 비해 사람을 더 고용한 것으로 따지면 현대차가 삼성전자보다 56%쯤 더 좋은 회사가 된다. LG전자는 작년 순이익이 불과 908억원이니 셋 중에는 가장 많이 고용한 기업이다. 다른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까지 내려간다면 이 순위는 더욱 요동칠 것이다. 그런 순위가 필요하다.
더 많이 고용하면서 돈을 덜 번 기업은 무능한 기업이 아닌가. 기업가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공동체의 입장에서는 이런 곳이 좋은 기업이다. 게다가 기업가가 원하는 좋은 기업 순위는 이미 발표하고 있다. 다른 기준도 제시해달라는 것이다.
이 기준뿐이 아니다. 어느 기업이 순이익 대비 정규직을 가장 많이 고용하는지, 어느 기업이 최고연봉과 최저연봉의 격차가 가장 적은지도 발표해달라. 등기이사의 연봉은 계속 늘어나면서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나는 기업도 알아야겠다. 기업가의 눈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보탬이 되는 기업 순위가 자리잡을수록 나라 전체가 편안해질 것이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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