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희수(77세)를 맞은 김종학 화백은 대중에게 친숙한 몇 안 되는 작가다. 젊은 시절 한때 추상화에 몰입했던 그는 1979년 설악산으로 들어가 30여 년을 보내며 '설악의 화가'란 별명을 얻었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화가의 숙명"이라고 여겼던 그에게 색과 형태는 중요한 화두였고, 야생화와 들풀을 화폭 가득 담은 그림은 그의 대표작이 됐다. 알록달록한 꽃 그림은 충분히 대중성을 갖고 있었고, '타락했다'는 화단의 비판에도 말이 어눌한 작가는 묵묵히 화업에만 몰두했다.
"돌이켜 보면 20대, 30대에는 사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면서 했던 것 같다. 40대가 넘어가면서 조금 알게 된 것 같고, 50대가 되니 내 작업이 보였다. 지난 50년이 일장춘몽 같다."
12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희수전 '진정(眞情)'을 앞두고 딸 현주씨(CHK아트 대표)와 며칠 동안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이후 2년 만인 이번 전시는 '설악산 꽃그림'으로 불리는 대표작과 소품 30여 점 외에 최근 작업한 폭 2~5m의 대작 10여 점, 초창기 목판화와 인물화 10여 점을 선보인다. 작품에 영감을 줘서 수집한 전통 농기구 10여 점을 함께 전시한다. 그는 30대 초반부터 목기, 보자기 등 민예품을 모은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5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40대, 50대에 그리던 그림은 이제는 못 그린다. 70대에는 70대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이 따로 있고 그걸 그리려 한다"고 말했다.
폭 2m가 넘는 신작 '월하'는 개나리, 칡넝쿨 등 갖가지 식물이 꼬물거리는 뱀처럼 둥글고 흰 달에 몰려드는 그림이다. "오후 5~6시에 본 달과 작업실 주변의 넝쿨 더미들을 그렸다"는 작가는 튜브 물감을 캔버스에 바로 짜내 그린다. "색을 섞으면 탁해지기 때문에" 지난 수 십 년 간 팔레트 없이 작업해 왔다. 강렬한 색감과 야생적인 기운이 생동하는 김종학표 그림의 특징이 여기서 나온다. 또 다른 신작 '수세미'는 기운차게 뻗어 나가는 넝쿨 사이로 탐스럽게 매달린 수세미가 새파란 여름 하늘과 대조를 이룬다.
그림 속 힘차게 꿈틀거리는 생명들은 하나같이 원근법을 무시한 채 평면적으로 재현된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이 가미된 상상 속 자연이다. 파란 하늘과 녹색 넝쿨, 노란 꽃잎 등 원색의 강렬한 대비는 평면성을 더 부각시킨다. "나는 자연의 꽃을 그리지만 형태와 색상에서 추상이 뒷받침을 하고 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갤러리 현대의 본관, 신관, 두가헌 세 곳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큐레이터' 김종학의 작품이기도 하다. 전시할 작품을 직접 고르고 배치 순서도 직접 짜서 설악산 꽃그림은 본관에, 대작과 농기구는 신관에, 목판화와 인물화는 두가헌에 걸었다. 그는 특히 "신관에 건 그림은 다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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