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감정’을 잊거나 잃지 않고 살다 보면 재미있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원래 말은 꺾고 뒤집고 하는 데서 재미와 묘미가 생긴다. 초점은 어떻게 얼마나 꺾고 언제 어디서 뒤집느냐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어색하거나 억지스러우면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된다.
KBS 2TV의 인기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에 ‘꺾기도’라는 코너가 있었다. 인기가 상당히 높았던 이 코너에서 개그맨들은 “잘 모르겠습니다~람쥐!”나 “제발 그러지 말아요구르트!”와 같은 말을 만들어냈다.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꺾어 듣는 사람들을 공황상태에 빠뜨리기 위해’ 말을 꺾기 때문에 ‘꺾기도’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나는 그 정도까지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나 스스로 만들었든 아니면 남들에게서 주워들었든 재미있게 자주 쓰는 말이 몇 가지 있다. 아무렇게나 쉽게 하는 이런 말 때문에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악의가 없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맞장구를 쳐주곤 한다.
우선 환장적이라는 말. 경치가 매우 좋거나 그림 또는 영화 등등 예술작품이 빼어나 감동을 줄 경우, 음식 맛이 기막힐 경우 사람들이 환상적이라고 할 때 나는 환장적이라고 말을 비튼다. 환상적이라고 말하면 너무 형식적인 것 같고 표현도 진부하니 환장 된장 고추장할 만큼 좋다는 뜻으로 이 말을 쓴다. 영어로야 당연히 ‘fantastic' 그대로지.
사실 는 책을 낸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장 김정운(전 명지대 교수) 씨도 지적했지만 우리말에는 감탄이 부족하다. 외국인들이 판타스틱이나 원더풀, 브라보를 외치며 감탄 찬탄을 할 때 우리는 뭐라고 하나? 기껏 한다는 말이 “죽이네!”라는 게 그의 한탄 섞인 지적이다.
그런데 그 말은 좀 거시기하지 않은가? 안 그래도 우리말엔 죽다, 죽인다가 게 너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것까지? 그러니까 너무 좋아서 환장할 것 같을 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때 “야, 정말 환장적이네!” “환장적인 연주였어요.”라고 하면 어떠냐는 게 내 주장이다. 싫으면 말고.
^그리고 가축적이라는 말. 가족이 한데 모여 오순도순 화락하게 즐기거나 각종 단체나 모임의 회원들이 친밀하게 잘 어울릴 때 흔히 가족적이라고 말한다. 단체의 회원들끼리 가족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참 많다. 나는 그런 경우 가축적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이 용납할 것 같으면 “상당히 가축적이시네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우리가 가축이야? 어따 대고!” 하고 따지고 든다면 그런 사람하고는 다음부터 놀지 않으면 된다. 내가 놀 사람이 그렇게 없을 줄 알고? ‘동물의 감정’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가축적이라고 해야지 가족적이라고 말하면 되겠어? 가축이 얼마나 인간에게 이롭다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말은 꺾고 뒤집어야 맛이 더 좋다. 생선도 잘 뒤집어야 타지 않는다. 그런데 꺾고 뒤집는 데는 다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가족은 가축, 환상적은 환장적, 이렇게 일단 발음이 비슷하지 않은가? 듣는 사람이 이 말인지 저 말인지 얼핏 분간을 하지 못할 만큼 비슷한 발음이라야 꺾고 뒤집는 묘미가 생긴다. 그걸 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건 무슨 법칙이더라?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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