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상대로 전방위 대화 공세에 나서면서 한반도 정세가 다시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북미 베를린 접촉이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지난달 22~24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이뤄졌다는 점은 이번 회동의 의미와 목적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최 총정치국장의 방중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제3차 핵실험 이후 악화한 북중 관계를 개선하고 김 제1위원장의 방중을 타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따라서 북한이 중국에 특사를 보낸 것과 동시에 미국과 접촉했다는 것은 북중 관계뿐 아니라 북미 관계도 한꺼번에 풀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일본과 대화의 통로를 튼 상태다.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일본 내각관방 참여가 북한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다. 양국이 납북자 문제를 논의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만남이 국교 정상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어쨌든 북한은 이지마 내각관방 참여의 방북으로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내는데 성공한 상태다.
최근에는 김 제1위원장의 특사가 러시아에 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한반도를 둘러싼 4개국과 모두 접촉하며 국면을 전환하고 주도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자칫 한국 정부가 따돌림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부에서는 나오고 있다.
북미 베를린 접촉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회동의 당사자가 리용호 부상과 로버트 킹 특사란 점에서 여러 주제가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미 북미간에 원칙적 합의가 이뤄진 인도적 차원의 영양 지원 문제가 테이블에 올랐을 가능성이 있다. 양측은 지난해 3월 베이징(北京)에서 영양보조 식품 24만톤의 전달 시기와 방법, 분배 모니터링 방식 등을 협의했으나 이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이 계획이 무산됐다.
북한에 억류중인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의 석방 문제도 양국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지난해 방북한 배씨는 '반공화국 적대범죄 혐의'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특별교화소(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킹 특사는 2011년 한국계 미국인 전용수씨가 북한에 억류됐을 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에 이어 북한을 방문, 전씨가 석방되는데 역할을 했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대화의 의지를 드러내는데 주목하고 있다. 6자회담 재개 여건이 점점 익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로 교체된 조태용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3일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안정과 비핵화에 도움이 될지를 잘 찾아 가급적 가시적인 진전을 이루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이제 살기 위해서라도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주중 북한 대사관 한 관계자는 5일 "우리는 항상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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