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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이공계 우대… '휴대폰 신화' 밑거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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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이공계 우대… '휴대폰 신화' 밑거름으로

입력
2013.06.0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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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지 20주년을 맞는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그룹 임원들을 불러 마라톤 회의를 주재하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로운 삼성, 질적으로 변화된 삼성을 주문한 이 신경영을 토대로 지금의 삼성이 만들어졌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삼성맨들은 이 회장의 신경영이 단순히 반도체ㆍ휴대폰 세계 1위 달성만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신경영의 핵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난 20년의 사건(혹은 키워드)으로 5가지를 꼽았다.

◆3급 신입사원: 삼성은 1995년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열린 채용제도를 실시, '대졸'대신 '3급'이란 용어를 도입했다. 지금도 삼성 채용공고에는 대졸사원 대신 3급 사원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더불어 서울의 명문대만 고집하지 않고 지방대와 전문대, 고졸 출신도 대거 채용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내 재벌그룹 가운데 소위 비 명문대, 지방대 출신 CEO가 가장 많고, 사내에서 학교 등에 따른 파벌이 절대 용납되지 않는 곳이 바로 삼성"이라며 "이런 능력주의가 지금의 삼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삼성의료원 장례식장: 예전 장례식장은 밤새 술 마시고 화투치는 게 흔한 장면. 장례용품에는 온갖 바가지가 극성을 부렸다. 1994년 삼성의료원 설립은 국내 의료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무엇보다 이런 장례문화를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실내 흡연과 도박이 금지됐고, 향냄새를 건물 밖으로 뽑아 문상객들 옷에 배지 않도록 했으며, 장의사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함으로써 바가지ㆍ뒷돈문화를 없앴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은 신경영을 단순히 제품이나 기술개발 차원으로만 국한시키지 않았으며 생활문화와 서비스 선진화를 위해 삼성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삼성디자인학교(SADI): 이 회장은 앞으론 제품기술 못지 않게 디자인이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고, 1995년 3년제 디자인전문학교인 SADI를 설립했다. 기업이 디자인에 투자를 한 첫 번째 케이스다. 지금은 보통 명사화되었지만, '디자인 경영'이란 말이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테크노CEO: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대기업 CEO는 예외 없이 법대나 상대 출신들이었다. 이공계 출신들은 승진 한계가 뚜렷했다. 하지만 삼성은 신경영 이후 기술개발의 주역인 이공계 출신들을 우대했고, 윤종용 황창규 진대제 이기태 등 테크노 1세대 스타 CEO들을 대거 배출했다. 현 삼성전자 CEO인 권오현 부회장을 비롯, 지금도 삼성 내엔 이공계 출신 사장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삼성 관계자는 "신경영은 곧 기술경영이고 인재경영"이라며 "이공계인력우대가 오늘날의 반도체신화, 휴대폰신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부품협력업체: 이 회장은 삼성전자 제품이 1류가 되려면 부품업체도 1류가 되야 한다고 강조, 경기 이천에 중소기업연수원을 지어서 기증했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교육생은 100만명이 넘는다. 하청업체라는 용어도 이 때부터 협력업체로 바뀌었다.

●프랑크푸르트선언

취임 5년을 보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3년 2월부터 6월까지 장장 4개월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일본 도쿄,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돌며 회의를 열었다. 이 회장은 국내와 달리 해외에선 철저히 외면 당하는 삼성제품의 현주소를 체험했고, 그동안 본인이 실무진들로부터 보고 받았던 내용들이 사실상 '사탕발림'에 가깝다는 사실에 격노했다. 이 회장은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200여명의 임원들과 장장 6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열었다. 제대로 닫히지 않는 세탁기 뚜껑을 칼로 깎아 맞추는 삼성전자 공장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보며"(제품보다) 정신이 썩었다"며질타했다. 이자리에서"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는 주문과 함께 양 아닌 질로 승부하라는 신경영을 선언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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