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금산군청은 지난해 3월 금산인삼약초건강관 조성 공사를 총 112억원에 발주했다. 예산 절감을 이유로 일반관리비 등 법정경비를 대폭 삭감한 액수였다. 지역 건설업체들이 조달청 기준 공사원가를 적용해 계산한 결과 적정가격에서 15억원(13.4%)이나 모자랐다. 금산군청이 턱없이 낮은 가격에 공사를 발주했다는 얘기다. 건설사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금산군청은 같은 해 7월 해당 사업을 118억원에 발주하겠다고 다시 공고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가 법정경비를 과다 삭감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황당한 발주 사례"라고 꼬집었다.
'갑을(甲乙) 상생'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건설업계가 '슈퍼 갑'인 공공기관들의 발주 횡포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랜 주택경기 침체 탓에 공사대금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공공기관 발주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사업 진행 과정에서 토지 보상비 전가, 추가공사 요구 등 다양한 불이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 발주 공사 수주액은 매년 34조~58조원에 이른다. 문제는 정부 입찰 및 계약 과정에서 공기 연장에 따른 추가비용 미지급, 공사비 부당삭감 등이 빈발한다는 점. 지난해 7월 대한건설협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94개 회원사 중 18%(17개)가 발주 공공기관에게서 추가공사 이행 요구, 토지보상비 시공사 전가 등 부당행위를 경험했다. 또 회원사의 22%(21개)가 설계변경 등으로 공사비가 대폭 늘었지만, 슈퍼 갑인 발주 기관의 눈치를 보느라 공사대금 조정을 적극 요청한 건설사는 3개에 불과했다.
심지어 발주처의 귀책 사유로 공사가 지연돼도 건설사들은 보상을 거의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30개 대형ㆍ중견 건설사들이 진행한 821개 공공 공사현장 중 발주기관의 귀책사유로 공사가 지연된 곳이 254개(30.9%)에 달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공사금액이 조정된 곳은 29%(73개)에 불과했다.
건설협회는 지난해 6월부터 '공사비 부당삭감신고센터'를 운영 중인데, 공사비가 최대 38%까지 부당 삭감된 경우도 있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예산 규모가 열악한 소규모 지자체나 공공기관 발주 공사에서 부당하게 공사비를 삭감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슈퍼 갑'의 횡포를 법원에 호소하는 건설사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현대건설 등 4개 대형 건설사가 지난해 3월 서울지하철7호선 연장구간 1∼4공구 공사와 관련해 낸 소송이다. 현대건설 등은 "서울시가 예산이 부족하다며 공사비를 제 때 주지 않아 공기가 1년9개월이나 연장됐다"며 "인건비를 포함한 현장관리 비용 등 간접비 141억원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했다.
건설업계는 공공기관의 부당한 요구를 막고 공기 지연에 따른 사업비 증액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발주기관들이 정확한 사업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국책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정확한 기본 정보를 건설사에 제공하면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혈세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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