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62) 전 국가정보원장이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1월 중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국정원 업무보고가 있던 날, 회의에 가지 않고 건설업자 등 지인들과 지방에서 골프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건설업자는 최근 검찰 수사에서 원 전 원장에게 공사 수주 청탁을 하고 명품과 순금을 선물한 것으로 알려진 H건설 대표 H씨로, 원 전 원장 개인비리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두 사람의 커넥션을 밝혀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3일 복수의 국정원 및 사정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현직에 있던 시기인 지난 1월 12일 경남의 한 골프장에서 H씨와 골프 회동을 가졌다. 당시 모임에는 금융기관과 중앙언론사 고위인사도 함께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골프 비용은 함께 라운딩을 한 금융기관 인사 쪽에서 지불했으며, 원 전 원장은 전날 부인과 함께 골프장 인근 특급호텔 특실에서 묵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원 전 원장이 고위직 골프 회동에 H씨를 데려간 것만 봐도 두 사람의 친분 관계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골프 회동 당일은 토요일이었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의 국정원 업무보고가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도 현직 국정원장이 지방에서 사적인 골프 모임을 가진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당시 인수위 내부에서도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원 전 원장 본인은 지방에서 골프를 치면서 인수위 업무보고에는 국정원 차장들만 보낸 것으로 안다"며 "인수위 보고에 꼭 참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정원에서 자리를 지키는 게 수장으로서 올바른 처신"이라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묻히는 듯했던 이날 골프 회동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여환섭)가 지난달 말 H건설을 압수수색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검찰은 현재 원 전 원장이 2010년 7월 한국남부발전이 발주한 삼척그린파워발전소 제2공구 토목공사 사업에 H건설이 하도급업체로 선정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실제로 H건설 압수수색에서 이 회사가 원 전 원장에게 상당량의 순금을 포함해 명품 가방과 의류, 고가의 건강식품 등 수천 만원어치 선물을 10여 차례에 걸쳐 원 전 원장에게 보낸 선물리스트를 확보했다.
검찰은 이날 H씨에 대해 수백억원 대 분식회계 및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H씨를 상대로 공기업 발주 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원 전 원장으로부터 추가로 특혜를 받은 적이 있는지 추궁할 방침이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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