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역사적인' 저물가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11월 이후 7개월 연속 1%대. 지난달엔 급기야 1.0%까지 내렸다. 환율 급등이라는 특수요인이 작용한 외환위기 직후 저물가 기간(14개월간 0.2~1.8% 유지)을 제외하면 사실상 우리 경제가 처음 겪는 저물가 시기다.
요즘 같은 저성장 국면에 저물가까지 길어지면 자칫 디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도 일각에선 제기된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물가는 7월부터 다시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3일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1년 전과 비교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를 기록, 1999년9월(0.8%) 이후 13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흐름으로 봐도 물가는 2011년 8월(4.7%) 이후 근 2년 간 지속적인 하락세다. 그렇다 해도 1%대 초반 행진은 당초 예상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그 배경으로 크게 3가지를 든다. 먼저 우리 물가에 끼치는 영향력이 큰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이 예상과 달리 오르지 않은 점. 당초 한은이 배럴당 105~110달러 사이를 예상했던 두바이유 가격은 최근 100달러선 아래까지 떨어졌다. 농산물도 매년 이상기후로 단기 급등세가 반복됐으나 올해는 날씨가 좋아 안정세가 지속되고 있다. 5월 석유류가격은 1년 전보다 7.4%, 농산물은 1.8% 떨어졌다.
여기에 최근 경기부진으로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도 미미한 상태다. 작년 상반기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2.2~3.4%)이었던 물가상승률도 이른바 '기저효과'로 작용해 올 상반기 물가를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고물가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낮은 물가 역시 반길 일은 아니다. 한은의 물가목표 범위(2.5~3.5%)에 작년 6월 이후 벌써 1년째 못 미치는 현실은 여러 우려를 자아낸다. 대표적인 것이 디플레이션 가능성. 2011년 2분기 이후 2년째 전기대비 성장률이 0%대에 머물고 있는 저성장 국면에 저물가까지 겹치면 자칫 일본과 같은 장기 디플레에 빠질 지 모른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저물가가 구조적인 수요 부진 현상의 전조일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경제의 성장 동력을 갉아 먹는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저물가에 대한 우려는 물가 자체라기보다 결국 경기에 대한 걱정"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기대 인플레이션 수준(3% 안팎)은 높은데 지표 물가만 낮은 상황이 지속되면 물가 회복을 위해 섣불리 기준금리를 내릴 수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1%대 물가가 오래 가지는 않을 거란 전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작년 7월부터 크게 낮아진 물가 수준이 상반기와는 반대의 기저효과로 작용하는데다 농산물 가격도 6월 중 장마가 시작되면 다시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7월부터 당장 물가가 오를 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는 2% 후반대에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내년 3월부터는 지난 2년간 물가를 0.3~0.4%포인트 낮추는 요인이었던 무상보육ㆍ급식 효과가 사라져 지금보다 물가가 그만큼 더 오르게 된다. 한은이 저물가 장기화 국면에도 여전히 물가상승 경계감을 늦추지 않는 이유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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