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 '아베노믹스'의 출발은 좋았다. 적극적인 통화와 재정정책은 채권수익률 하락과 중앙은행의 채권매입을 통한 자산가격 상승을 통해 디플레이션에 대한 시장기대를 반전시키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일본국채(JGB)의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금리상승과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었다. 모처럼 회복기미를 보이던 주식이 요동치면서 주변국으로의 자본역류 위험마저 높아졌다. 이래저래 전후 가장 적극적인 자세로 출발한 아베노믹스는 일본경제의 한계와 현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사실 미국 달러화 대비 엔화는 이미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절상추세를 지속해왔으며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상대적인 강세를 유지해왔다. 역내 금융낙후로 인해 경상수지 흑자의 처리역량이 부족함에 따라 부동산, 국채와 달러표시자산 등 안전자산 위주의 축적과 버블생성과 붕괴가 관찰되었다. 더욱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채감축과정의 여파는 경직적 중국의 환율체제로 인해 대부분 엔고의 충격으로 전달되었다. 이제 미국의 연준마저 무제한 양적완화에서 벗어나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위기상황은 G7의 묵시적 협의 하에 양적완화에 나설 정도로 악화되었다. 상호의존적인 경제구도하에서 일본마저 더 깊은 침체에 빠질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다. 따라서 아베노믹스는 일본 자체의 회복을 위한 자체적 선택이라기 보다는 글로벌 차원에서 불가피해진 부채 대순환의 최종적 고육책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문제는 양적완화의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 있다. 첫째, 각국 중앙은행들이 만들어내는 풍부한 유동성은 실물경제 회복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이나 투자흐름의 회복으로 뒷받침되는 자산가격 회복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유동성 장세가 연출되고 있다. 둘째, 시장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위험이 산재해 있어 민간투자심리가 위축되어 있기 때문에 인위적 자산가격 회복이 금융기관의 중개기능회복으로 이어져 실물회복을 견인하기 보다는 또 다른 자산버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인플레이션 심리가 과도하게 자극되고 여기에 재정위험에 대한 우려로 금리상승이 불가피해진다면 정책처방의 한계는 불가피하다. 셋째, 아시아 경제는 대체로 시장작동에 있어 관료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환율안정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내수기반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고통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즉, 아베노믹스로 인해 초래되는 주변국가들의 추가적 부담은 보호되어야 할 민생경제에 오히려 집중되기 쉽다.
안타깝게도 문제가 점차 심각하게 꼬여가는 데도 불구하고 경제와 금융시스템의 근본 문제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개혁드라이브는 논의조차 실종됐다. 일상적 생활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해갈등 상충이 본격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개혁은 일시적 구호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다만 지금부터는 미래와 이웃을 어렵게 하는 일련의 선택에 대해서 이해당사자들이 보다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통해 이를 완화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 분명 아베노믹스는 세계화된 환경에서 상황에 밀려 고육책의 일환으로 취해진 국가단위의 선택이다. 따라서 향후 상당한 수정이 불가피하다.
향후 거시정책위주의 대응보다는 역내차원의 대응이 우선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국익을 지키는 차원에서도 국가적 선택을 공히 포괄하는 역내차원의 메가프로젝트 추진이 더 효과적이다. 개별보험 차원의 재원을 상호이익의 공감대위에서 자원이나 낙후된 비교역재 부문의 대규모 공동투자에 적극 투입할 경우 아시아는 충분한 자체 내수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유사한 충격에 노출된 아시아 국가들, 특히 한·중·일(A3)은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이해증진의 당위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역내경제의 통합을 위해서는 시장기구의 확충과 민관 협의기구의 상설화를 통해 역내차원의 공감대 형성과 준비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제라도 당국은 외교적·경제적 역량을 총동원해서 아베노믹스의 후속 개정판인 A3 이니셔티브를 만들고 선보여야 한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