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과 먼저 스러져간 친구 얼굴을 떠올리며 주저없이 포화 속으로 뛰어들었지…"
2일 중부전선 최전방 지역인 강원 철원군 육군 3사단에서 거행된 태백중학도병 참전기념식.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전우들의 모습이 떠오른 듯 팔순 노병들의 눈엔 어느새 물기가 차 올랐다.
태백중 학생 127명이 참전을 결심한 것은 6ㆍ25전쟁에 중공군이 개입한 1951년 1월.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판단한 당시 15~17세의 학생들은 1ㆍ4후퇴 닷새 후인 1월 9일 펜 대신 총을 잡고 전선으로 향했다. 박효칠 교사의 인솔 아래 지독한 눈보라와 허기를 참으며 사흘 동안 걸어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3사단 23연대를 찾아갔다.
그때 연대장이 "나이가 어려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대를 거절하자 학생들은 나이와 키를 속이며 "싸우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학생들의 구국 의지에 감동한 연대장은 결국 입대를 허락했다.
군복이 없어 교복을 입고 훈련을 한 학도병들은 1월 26일 강원 영월군 녹전에서 첫 전투에 참가했다. 여기서 손길상 학우를 잃어 첫 전사자를 냈다. 그렇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그 해 5월 16일 인제 상답지구에서 13시간 동안의 공방끝에 중공군에 포위된 3군단의 퇴로를 확보하는 전공을 올렸다.
군번없이 최전선에서 싸우던 이들은 그 해 6월 1일 정식으로 군번을 부여받고 간성 쑥고개 전투, 양구 가칠봉 전투 등 강원 지역 전투에 잇따라 참가했다. 전쟁은 이들이 입대한 지 2년 6개월 만에 멈췄지만, 18명의 학우가 끝내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태백중 학도병들은 전쟁이 끝난 후 화랑도의 '화'자와 태백의 '백'자를 딴 화백회를 결성하고 매년 6월 1일 모교에서 전사한 학우들의 영령을 기리고 있다. 태백중은 뜻하지 않은 시기에 군에 입대한 이들에게 1997년 명예졸업장을 수여했고, 3사단에는 2005년 '태백중학교 학도의용군 기념비'가 건립됐다. 학생들을 이끌었던 박 교사는 75년 세상을 떠났다.
이용연(81)화백회 회장은 "고향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에게 화랑 담배를, 어머니에게는 양말을 선물하겠다던 허순필 학도가 전사했을 때는 슬픔을 참기 어려웠다"면서 "현리 전투에서는 학우 2명의 시신을 묻으며 산천이 떠나가도록 통곡했다"고 회고했다.
태백=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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