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한테 사달라고 하기 어려운 노인용 기저귀, 없어서 못 팔정도지요."
양춘자(73) 할머니는 매주 화요일만 되면 아침부터 입가에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늘 '일하는' 자신을 상상해 온 할머니의 꿈이 두 달 전부터 실현됐기 때문이다. 양 할머니가 시작한 일은 계산대에서 손님을 맞고 물건을 판매하는 일. 일흔이 넘은 나이에 힘들 법도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운이 넘친다. 양 할머니는 "내가 일하는 곳은 매우 '특별한' 마켓"이라고 자랑하며 "이곳 최고의 인기상품은 1만2,000원에 판매하는 20개들이 노인용 기저귀"라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3평 남짓한 공간에 마련된 유리진열대와 진열장에는 노인용 기저귀, 간이 대변기, 보행차, 찜질팩 등 일반적인 대형마트에선 쉽게 찾기 어려운 노인복지용품이 빼곡하다.
지난 3월 28일 서울 송파구 잠실4동 주민센터에 개장한 '잠실나루 시니어마켓' 풍경이다. 노인복지용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매장이다.
특히 관내 6개 경로당 소속 노인들이 마켓에서 직접 물건 판매에 나서 눈길을 끈다. 진열장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물건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사람, 판매하는 사람들이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라 이채롭다. 양춘자 할머니를 비롯한 20여 명의 어르신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2명씩 순번을 정해 낮 12시부터 하루 6시간씩 근무하고 있다.
이 곳을 찾는 어르신들도 자신에게 필요한 마켓이 생겨 즐거운 눈치다. 안마기를 구경하던 이상순(76) 할머니는 "많은 노인들이 자식들이 괜히 귀찮지 않을까 염려돼 필요한 노인용품이 생겨도 매번 얘기하지 않는다"며 "노령인구가 많아진 요즘 시대에는 이런 마켓이 많이 생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경로당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마켓에 왔다는 길해금(90) 할머니는 "한 켤레에 5,000원인 미끄럼방지양말이 좋더라"며 "질도 좋지만 시중가보다 20%나 싸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잠실 4동은 판매수익금 전액을 복지기금으로 활용, 3개월에 한번씩 관내 6개 경로당에 고르게 배분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최세열 잠실4동장은 "노인들이 필요한 물건을 직접 사고파는 시니어마켓은 우리 말고는 없을 것"이라며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복지에도 도움을 주는 등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고 자랑했다.
글ㆍ사진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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