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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작품으로… 통념 깬 한국관의 색다른 공간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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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작품으로… 통념 깬 한국관의 색다른 공간 연출

입력
2013.05.3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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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미술 축제인 제 55회 베니스 비엔날레(6월 1일~11월 24일) 개막을 앞둔 30일, 자르디니 공원 안 한국관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언론 공개 행사에 참석한 미술계 인사들에게 진행 요원들이 신발을 벗고 20명씩만 안으로 들어오라고 요구한 것. 별별 희한한 상상을 다 실현하는 현대미술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좌식 문화가 익숙지 않은 서양에서 맨발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이렇게 입장한 관람객들을 맞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전시장이다.

2013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이 1일 개막했다. 국제 미술계에서 활동 중인 김승덕(59) 커미셔너와 김수자(56) 작가가 함께한 이번 전시의 제목은 '호흡 : 보따리(To Breathe: Bottari)'다.

30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 작가는 "30여년 실험을 거쳐 진화한 제 작업이 총체적으로 재현된 작품"이라고 자부했다. "한국관은 (전시가) 쉽지 않은 공간인데, 건물 외부의 유리창을 하나의 피부로, 한국관을 제 몸으로 제시했습니다. 거울과 반투명 필름, 자연의 빛을 써서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꿨지요."

1995년 지어진 한국관은 작고 복잡한 데다 통유리로 만들어져 전시 기획자와 작가를 괴롭혀 왔다. 자르디니 공원 안 화장실을 개조해 한국관으로 활용하되, 화장실 설계 구조를 변경하지 말고 공원 앞 바다 경관도 해치지 말라는 베니스 비엔날레 측의 요구 때문에 건축가 김석철이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방안이 '유리 전시장'이었다. 때문에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가벽을 설치해야 했고, 영상작품을 설치하려면 유리벽으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해야 했다. 김 작가는 "한국관의 특징과 공간적 위치를 중점적으로 고민하며, 한국관이 지닌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안에 작품을 설치하는 통념에서 탈피해 전시장을 작품으로 만드는 방법을 썼다. 유리로 된 한국관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건축물 자체를 커다란 보따리로 규정했다. 작가는 "보따리의 싸고 푸는 성격, 빛과 소리를 최대한 밀도 높게 전개했다. 특히 전시장이 신체와 맞닿는 관객의 체험을 유도하려 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벽 전체에 무지개 빛 반투명 필름을 붙이고, 바닥과 기둥에는 거울을 붙여 텅 빈 공간을 강조했다. 자연광은 필름과 만나 무지개색 스펙트럼을 만들어 낸다. 해가 뜨고 짐에 따라 한국관 내부의 빛도 다양하게 변한다. 여기에 작가의 숨소리를 녹음한 사운드 퍼포먼스 '더 위빙 팩토리(The Weaving Factory)'가 더해진다. 한국관 전체가 숨을 쉬는 보따리가 되는 셈이다. 맨발의 관객이 이 전시장을 따라 걷다보면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

전시장 한 쪽에 마련된 또 다른 작품 '호흡: 정전(To Breathe: blackout)'은 반대로 소리와 빛을 완벽하게 차단한 공간이다. 작가는 "빛과 어둠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내 숨소리가 차단된 곳에서 관객이 자신의 호흡을 마주하는 경험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1995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특별전 '호랑이꼬리전'에서 보따리와 빛 설치 작품을 선보였고,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하랄트 제만이 주도한 본전시에 코소보 전쟁의 난민들에게 헌정하는 보따리 트럭 작업으로 참여하는 등 올해까지 베니스에서 여섯 차례 작품을 발표했다. 김승덕 커미셔너와 호흡을 맞춘 건 이번이 네 번째. 김 커미셔너는 "무언가를 많이 넣거나 빼지 않고 그저 반투명 필름으로 한국관을 보따리처럼 싸서, 우리가 늘 보는 빛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진짜 고요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사진가이자 미술비평가인 피에트로 프라네시는 " '호흡 : 정전'에서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 안에 서 있는 느낌이다.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다양한 기억을 하나로 감싸는 전시"라고 호평했다.

베니스=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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