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유전자(본성)에 의해 결정되는가, 아니면 환경(양육)에 의해 길러지는가.
본성과 양육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하지만 미국 MIT대 과학사ㆍ과학철학과 이블린 폭스 켈러 교수는 이것이 시작부터 잘못된 무의미한 논쟁이라고 역설한다. 논쟁이 전제하고 있는 본성과 양육 사이의 틈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본성과 양육이 각각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치는지 측정하려는 시도는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드럼 소리가 연주자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그의 악기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질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한쪽을 다른 한쪽으로부터 확실히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질문 자체가 의미 없으며 논쟁은 사실 끝났다는 것.
저자는 생물학, 과학사, 언어학을 넘나들며 얼핏 명료해 보이는 본성과 양육의 구분이 실은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 속에서 사용되어온 개념들의 혼돈 속에서 잘못 만들어진 것이라 설명한다. 양육과 본성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따지는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다양한 생물적, 환경적 요인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연구하는 데 자원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전학의 언어와 개념을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숨겨진 비밀을 풀어가는 저자의 꼼꼼함은 감탄할 만하다. 하지만 전문적인 내용인데다 매끄럽지 않은 번역 탓에 책의 문장은 꽤나 어렵다. '표현형적 형질의 발생은 실제 뉴클레오티드 배열보다 유전자가 발현되는 패턴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같은 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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