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이 쓴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가 검정심의 본심사를 통과해 '자유민주주의' 논란에 이어 제2의 역사교과서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2011년 뉴라이트 인사들이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 개정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해 역사교과서 논쟁이 휘몰아친 데 이어 이번엔 직접 보수적 이념을 담은 교과서를 쓴 것이다.
31일 역사교과서 검정 작업을 교육부로부터 위탁받은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고교 한국사교과서 검정심의에서 권희영 한국현대사학회 회장이 주요 집필자로 참여한 교과서를 비롯한 8종이 지난 10일 본심사를 통과했다. 현재 검정심의위원회가 권고한 수정ㆍ보완을 거쳐 8월 30일 최종합격이 결정되면 학교 별로 채택 과정을 거쳐 내년 3월부터 일선 학교에서 수업에 활용할 수 있다. 역사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뀐 이래 수정ㆍ보완 단계에서 탈락한 역사교과서는 없다.
교과서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집필을 주도한 권 회장의 그간 주장들을 감안하면 '이승만 국부론'이 대두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31일 한국현대사학회와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교과서문제를 생각한다'는 학술회의에서도 권 회장은 "현재 교과서들이 아무 내용 없이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을 폄하하고 여운형에 대해선 합리적이며 이상적인 독립국 건설 위해 활동했다고 극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는 "뉴라이트는 해방 이후 1948년까지 3년을 바라보는 관점이 기존 역사학계 시각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명해야 한다는 청원을 하고 박정희뿐 아니라 이승만을 국부로 추어올리며 재평가해왔는데 이런 맥락의 기술이 (교과서에)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제의 침략과 식민 암흑기 대해서도 뉴라이트는 '자학사관'이라는 일본 극우세력의 역사관에 입각한 주장을 펴왔다. 2008년 교과서포럼이 낸 대안교과서를 보면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 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축적되는 시기"였다는 주장을 폈었다.
이처럼 보수적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되는 역사교과서 발간에 대해 한국역사연구회 부회장인 정연태 가톨릭대 교수는 "뉴라이트의 주장은 논란 수준이 아니라 역사를 심각하게 파편적이고 퇴행적으로 보고 있다"며 "역사학계에서 그간 연구되고 걸러졌던 판단이나 일반적인 시민들의 판단을 벗어난 주장이 교육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현대사)는 "아무리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고 하지만,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왜곡된 역사관이 교과서로 나오는 건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설사 검정을 최종 통과하더라도 시민의 힘으로 시장에서 유통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국현대사학회의 핵심 인물들을 보면 역사 전공자는 일부이고 나머지는 군 관련 인사, 교육계 인사 등이다. 이사ㆍ고문ㆍ상임위원 등 임원 61명 중 현대사와 근대사 전공자는 8명뿐이다.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모임' 공동대표이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민주당 간사인 유기홍 의원은 "교과서가 최종 합격된 이후라야 공개된다면 오류를 시정할 기회조차 없어지는 것"이라며 "이후라도 국회에서 편향성 여부를 철저히 따지겠다"고 밝혔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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