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제 1회 '중독 추방의 날' 캠페인이 열렸다. 기독교 단체가 중심이 된 '중독예방시민연대(대표 김규호 목사)'는 '오(5)늘 이(2) 중독의 고통에서 우리 가족을 구(9)해내자'라는 슬로건 앞 글자를 따서 5월 29일을 중독 추방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이 단체가 대표적 중독증상으로 든 것은 도박 인터넷 성중독이다. 그러나 도박과 인터넷은 제쳐두고 술과 성중독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윤창중 사건 이후 술과 성이 결합된 사건이 수도 없이 드러나고 갈수록 더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가 집중된 탓도 있겠지만 실상은 보도된 것보다 더 심하리라고 생각된다.
중독은 특정한 사상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게 되거나 어떤 사물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다. 바꿔 말하면 긴장과 감정적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엔가에 의지하는 의존증이 곧 중독이다.
우리 사회는 왜 술과 성에 중독된 것일까? 국민 전체의 정서와 깊은 속마음을 정밀 분석해야 하겠지만,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은 일탈과 해방을 늘 갈망하고 있는 것 같다. 술은 공개적 일탈, 성은 비공개적 일탈의 촉매로 보인다.
술에 관해 우리는 전통적으로 관대했다. 술주정이나 취중 잘못은 눈감아 주어야 할 실수나 애교로 치부되고 있다. 빨리빨리 마시고 다 함께 빨리 취해 죽자는 식의 폭탄주 위주의 한국 술문화는 세계인들에게 자랑해도 될 만한 일종의 '한류'처럼 돼버렸다.
술중독은 그렇다 치고 성중독은 간단히 말해 인터넷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에 성과 폭력이 넘쳐흐르면서 성에 대한 의존증이 심해졌다. 성중독에는 소년과 노인이 따로 없다. 우리나라처럼 고속 통신망이 세계적으로 잘 발달된 나라에서 인터넷윤리와 정화장치가 특별히 작동되지 않는 한 인터넷은 성중독을 전파 확산시키는 부정적 기능을 하게 된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술과 성이 결합되면 곧잘 추문과 스캔들, 의혹으로 비화된다. 더구나 남성은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보다 숫자도 많고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갑의 위치여서 술을 매개로 한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이 자주 빚어진다. 문제는 그 심각성을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다.
지금 나이가 든 여성들은 자신들이 젊었을 때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성추행과 성희롱에 대해 뒤늦게 분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여성의 인권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남녀 평등에 대한 요구가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들, 권력과 부와 명예를 거머쥔 남자들은 여전히 과거의 행태와 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언동을 교정하지 못하고 있다. 출세를 위해 달려오는 동안 속을 다지지 못해 허무하고 텅 빈 채 내버려둔 그들의 내면에서는 오늘도 일탈의 욕망이 작동한다.
어디 나이든 사람들만 그렇던가? 대학생들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경우도 심각하다. 최근 육사에서 발생한 성폭행 문제는 술과 성이 결합된 사건의 더 악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말 280개 대학 사례를 조사해 발표한 '2012 대학교 성희롱ㆍ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교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피해사례는 2009년 평균 0.6건에서 2010년 0.8건, 2011년 1.2건으로 늘어났다.
여성을 평등한 인격체나 대등한 동료, 친구로 보지 않는 한 술과 성이 결합된 사고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특정한 생각이나 사상에 빠져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하지 못하는 게 바로 중독이다. 조기에 치료되지 않으면 중독은 빨리 널리 전염 전파된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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