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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개찰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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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개찰의 법칙

입력
2013.05.2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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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다 보면 혀가 꼬이고 말이 꼬이고 발음이 꼬이는 경우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현상이 심해진다. 어휘를 선택하는 언어감각이 떨어지고 몸이, 특히 그놈의 혀가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과 달리 엉뚱한 말을 하거나 이상한 발음이 튀어나와 본의 아니게 망신을 당하거나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 생긴다.

어느 대기업 회장님은 말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아랫사람이 말씀자료를 일일이 다 적어주어야 한다. 그냥 내버려두면 무슨 실언, 무슨 엉뚱한 발언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회장님은 적어주는 것도 잘 못 읽거나 잘못 읽으니 대책이 없다. ‘출동’을 ‘충돌’이라고 읽고 ‘패러다임’을 ‘파다라임’이라는 희한한 말로 발음하기 일쑤여서 보좌진은 늘 불안하다고 한다.

머리가 너무 빨리 돌아가면 그럴 수도 있다. 컴퓨터로 글을 쓸 때 커서가 빨리 자판을 치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엉뚱한 실수를 하게 된다. 깜빡이는 커서를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지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머릿속에서 생각의 커서가 그런 식으로 작동을 하면 마음이 급해져 혀가 생각을 못 따라가거나 오히려 앞장서 버리는 일이 생긴다.

얼마 전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을 때 나는 멋진 술 이름 하나를 만들어 냈다. 무슨 소주를 마시겠느냐고 묻기에 “처음이슬 주세요.” 그랬다. 나는 주로 참이슬을 마신다. 그때 내가 실제로 하려고 했던 말은 “처음처럼 말고 참이슬 주세요.”였는데, 내 혀는 ‘처음처럼+참이슬=처음이슬’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그 식당 아주머니는 어떻게 용케도 알고 참이슬을 갖고 왔다. 내 발음이 나빠서 처음이슬을 참이슬로 알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말을 하고 보니 이 술 이름도 괜찮을 것 같다. 두 회사가 합작을 해서 ‘처음이슬’이라는 소주를 만드는 건 불가능할까? 소주계의 멋진 M&A 사례가 될 수도 있을 텐데. 판매수익이야 반반씩 갈라 가지면 되겠지. 그리고 작명가인 나에게도 섭섭하지 않게 주어야겠지.

ㄱ과 ㅅ, 또는 ㄱ과 ㄹ이 엉키고 얽혀서 이상한 말을 만들어내는 일도 많다. 어떤 여성은 “감사합니다.”라고 할까 “고맙습니다.”라고 할까 망설이다가 머릿속에서 말이 엉키는 바람에 “곰사합니다.”라고 엉뚱한 인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감사하다와 고맙다, 이 두 말은 메시지는 같지만 상황에 따라 쓰임새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며칠 후에는 함께 차를 마시던 선배가 무슨 말 끝에 “그러면 가맙지.”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감사하다+고맙다’가 가맙다가 된 건데, 본인은 그렇게 발음을 하고도 모르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자기만 실수를 하는 게 아니어서 참 가맙고 곰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경우 곰사하다, 가맙다는 말은 튀어나오는데 고사하다라는 말은 왜 안 나올까? 이런 것도 연구대상 아닐까? 아마도 고사(固辭)하다라는 말이 따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고’를 ‘그게 아니가’, ‘그게 아니로’라고 잘못 발음하는 건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다. 아닌가? 나만 그런가? 나만 그렇다면 내가 더 조심해야 하겠지만, ‘그게 아니로’를 넘어 ‘그게 아니루’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나는 보았다.

말 실수, 발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건 가능성이 아니라 개연성의 문제다. 그러니 남이 잘못 발음을 하더라도 잘 새겨서 알아듣고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자세를 갖춰야 사회생활이 원활해지고 사교관계가 원만해진다. 아니, 사회생활이 원만해지고 사교관계가 원활해진다고 바꿔 말해도 무방하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잘 듣는 사람이 말을 잘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면 남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개찰의 법칙’이다. 개찰의 법칙은 처세의 요령이자 지침이면서 삶의 지혜가 되는 원리이다. 항상 ‘개찰의 법칙’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 개찰!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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