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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떠넘기고 대금 미루고… 건설업계는 '갑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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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떠넘기고 대금 미루고… 건설업계는 '갑의 천국'

입력
2013.05.2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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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건설업체를 포함 건설업계서만 30년 넘게 근무하다 5년 전부터 직접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장모(64)씨는 지난해 말 황당한 경험을 했다. 시공능력 순위 14위인 경남기업으로부터 87억원짜리 도로공사를 따냈을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지만, 며칠 뒤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받은 것. 견적서 문제로 경남기업을 방문한 자리에서 직원이 계열사인 온양관광호텔의 2박3일 이용권 100장을 사라고 요구했다. 이용권 1장 판매가격이 60만원이니 6,000만원을 강매하려는 것이었다. 장씨는 하소연 끝에 3,000만원어치를 구입하는 선에서 매듭을 지었다. 장씨는 "공사 시작도 전에 수천만원어치의 유가증권을 강매하는 것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라며 "캐비닛에 이용권이 수북이 쌓여 있는 걸로 봐서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요구를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을 위한 '갑을(甲乙) 상생'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건설업계의 '갑 횡포'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2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표적 하도급 불공정 거래는 공사 수주를 조건으로 미분양아파트나 회사 및 계열사의 유가증권 구입 등을 하도급업체에 요구하는 경우다. 시공능력 29위인 풍림산업은 2009년 2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하도급업체 122곳이 자사의 미분양아파트 224가구를 분양 받는 조건으로 하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하도급업체가 미분양아파트를 구입하기로 계약했지만 본질은 '강매'라고 판단한 것이다. 비슷한 유형으로 건설업체들이 공사대금을 현금 대신 미분양아파트 등으로 하도급업체에 대물변제하는 '떠넘기기'도 만연해 있다. 계약 시 특약 사항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하도급업체에 현저하게 불리한 조항을 삽입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종합건설업체에는 을(乙)인 전문건설업체도 납품업체에게 갑 못지 않은 횡포를 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1년 매출액 3,500억원으로 전문건설업계 상위권 업체인 태아건설은 2009년 9월 '경인아라뱃길 제6공구 수역굴착 공사'에 필요한 골재를 납품 받고도 법정 지급 기일인 60일 내에 하도급업체에 공사대금 7억1,300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태아건설은 공정위 조사에서 사실을 부인하다 납품내역확인서 조사 등을 통해 들통이 나 공사대금 7억1,300만원 지급과 함께 과징금 1,500만원의 제재를 받았다.

건설업계의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문화는 한 때 나아지는 듯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전까지 국내 부동산경기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하도급업체에 현금지급 우선 등 불공정 관행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전반적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금융위기 후 건설경기가 추락해 대형건설사들마저 자금난에 빠지면서 다시 제자리로 후퇴했다. 대형건설사들이 "나부터 살고 보자"며 현금 대신 어음 지급, 단가 후려치기 등 하도급업체 쥐어 짜기를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불공정 하도급 관행 개선 노력과 함께 공동도급제 확대 등 제도적 수단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욱 공정위 건설하도급용역개선과장은 "불공정 거래 혐의가 발견되면 철저하게 조사하고 계약 때 하도급업체를 상대로 한 부당 특약 감독도 엄격하게 조사해 하도급업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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