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한국인 여성 수학자가 312년 동안 이어져온 ‘금녀의 벽’을 뚫고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예일대 수학과 정교수가 된다. 종신직(테뉴어) 교수로 임용된 것이다.
고등과학원은 “우리 기관 소속 스칼라(객원교수)인 오희(44) 미 브라운대 교수가 7월 1일자로 예일대 정교수에 임용됐다”고 29일 밝혔다. 예일대가 종신직 교수로 수학과에 여성을 임용한 건 처음이다. 오 교수는 “예일대 그레고리 마굴리스 교수의 제자였는데 이제 동료로서 함께 연구하게 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수학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오 교수는 “시간을 투자하고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했다. 다만 “수학을 좋아해서 계속 생각이 나야 가능한 일”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수학자라고 하면 미국인들은 ‘당신 천재군요’라고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 수학 참 못했는데’ 해요. 대중이 수학을 어렵게 느끼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죠. 뛰어난 수학자들은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에요.
오 교수도 사실 처음부터 수학자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달달 외워야 하는 다른 과목에 비해 스스로 생각하며 공부할 수 있는 수학에 매력을 느끼긴 했지만, 막상 대학입시 때는 큰오빠의 권유로 1지망으로 의대를 썼고 수학과는 2지망이었다. “기대했던 1지망에선 떨어지고 2지망으로 입학했어요. 재수를 할까 고민하다 1학년 때 미적분 수업이 재미있어서 계속 다니게 됐죠.”
대학 3학년 때는 학생운동에 전념했다. 수학만 공부하는 인생이 너무 뻔해 보여서 더 의미 있게 살고 싶었던 게 이유였다. 하지만 총학생회 활동으로 1년을 보내고 나니 슬슬 문제 푸는 게 그리워졌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회과학 공부를 했어요. 사회과학에는 최선과 차선은 있지만 정답이 없죠. 그래서 수학으로 돌아왔어요.”
그의 눈에 수학과 사회과학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변을 아무리 두드려 봐야 소용 없고, 핵심을 정면으로 돌파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선배 수학자와의 소중한 인연도 그 시절에 맺어졌다. 당시 학생운동 하느라 공부를 못했던 오 교수는 중간고사 답안지에 답 대신 편지를 썼다. “이 땅의 민중을 위해 옳은 길로 가려는 제자를 사랑스럽게 생각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시험을 냈던 이인석 서울대 수학과 교수는 오 교수가 유학 준비를 할 때 예일대에 추천서를 써줬다. 그 뒤 미국으로 이 교수가 보낸 택배가 도착했다. “그때 그 답안지였어요. 다시 읽어보니 참 명문이더라 하시면서요.”
1992년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97년 예일대 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미 프린스턴대, 캘리포니아공대 등에서 교수로 일했다. 2006년부터 브라운대에 몸 담았고, 2008년부터는 1년에 2~3개월씩 고등과학원에서 연구를 진행해왔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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