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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도 즐긴 고찰 백련사의 떡차… '두텁고 깊은 맛' 비로소 눈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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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도 즐긴 고찰 백련사의 떡차… '두텁고 깊은 맛' 비로소 눈 뜨다

입력
2013.05.2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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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의 천년 고찰 백련사는 천연기념물 동백나무숲과 야생차로 유명하다. 높이 7m의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자라는 넓은 숲에 야생차가 흩어져 있다. 절 뒷편 산 속 여기저기에도 차나무가 많다. 백련사를 품고 있는 만덕산의 옛 이름은 차나무가 많다 해서 다산이다. 조선시대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의 호가 바로 이것이다. 다산은 명맥이 거의 끊어졌던 한국 차 문화를 다시 일으킨 주역이기도 한데, 강진 유배 시절 백련사 차를 즐겼다. 차를 보내 달라고 백련사 혜장스님에게 써 보낸 애교 섞인 편지 '걸명소'가 남아 있다. 다산이 머물던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는 오솔길로 1km, 설렁설렁 걸어서 30분이면 닿는 거리다.

백련사는 지금도 차를 만든다. 이 절에서 차 만들기는 초파일 행사 다음으로 큰 일이다. 녹차도 만들고 발효차도 만들지만, 다른 데선 보기 힘든 떡차도 만든다. 떡차는 찻잎을 찜통에 찌고 콩콩 찧어서 떡처럼 빚은 덩어리차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중국의 보이차를 생각하면 되겠다. 빚은 것을 메주나 청국장 띄우듯 띄워서 만드는데, 다산이 즐긴 것이 바로 이 떡차다.

초파일을 닷새 넘긴 지난 22일, 조용하던 백련사가 슬며시 분주해졌다. 주변에서 딴 찻잎으로 떡차를 만드느라 절 아래 동네 할머니들이 일을 거들러 올라왔다. 평소 이 절의 식구라곤 스님 두 분과 공양주, 고시 공부하러 와 있는 사람 너댓 명이 전부다.

덖어서 만드는 녹차, 홍차 같은 발효차에 비해 떡차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있었으나 지금은 보기 힘든 귀한 차가 되었다. 전남 장흥과 강진 백련사, 지리산 자락에서 조금씩 나온다. 예로부터 '청태전'이라 불리는 장흥의 떡차는 5년 전 군이 앞장서서 사업단을 만들고 지원해서 상품으로 나오고 있다. 바로 옆 강진군도 떡차 전통을 살리려 애쓰고 있지만, 아직 상품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강진 떡차는 일제강점기에 이한영이라는 이가 '백운옥판차'라는 상표로 대구 약령시까지 나가 팔았지만, 지금은 백련사 다실인 만경다설에 가야 맛볼 수 있다.

떡차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찻잎을 따서 한나절 그늘에 말린다. 잎이 시들새들해지면 살살 비벼서 껍질을 벗긴다. 그런 다음 찜통에 찌고 절구로 찧어 모양을 빚는다. 이것을 메주나 청국장 띄우듯 뜨뜻한 방에서 15~20일 가량 띄우면 완성이다.

백련사 만경루에서 전날 시들린 찻잎을 비비는 일을 하던 할머니가 말했다. "살살 해야혀. 세게 문지르면 뽀사지니께(부서지니까)." 껍질을 벗기는 것은 탄닌, 카테킨 등 찻잎 성분을 끄집어내 발효가 잘 되게 하기 위함이다. 감 껍질 벗겨 볕에 말리면 떫은 맛이 사라지고 단맛 나는 곶감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떡차 빚는 일은 일은 툇마루에서 했다. 잘 찧은 찻잎을 경단처럼 뭉쳐 손바닥 절반보다 작은 납작 접시에 넣고 손으로 눌러서 모양을 잡았다. 한복판이 배꼽처럼 쏙 들어가도록 엄지 손가락을 중심으로 접시를 돌려가며 둥글납작 빚는데,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모양이 잘 안 나온다. 다른 데서는 다식판 같은 틀로 찍어내기도 한다. 매년 봄 차 만들 때면 백련사로 와서 거든다는 비구니 스님이 요령을 알려줬다. "단단하면 공기가 안 통하니 얼멍얼멍 빚으세요. 가운데 옴폭한 것도 너무 세게 누르지 마시고." 하기는 떡차는 미생물 발효로 만드는 차이니 숨 쉴 구멍이 필요하겠다.

백련사 주지 여연스님은 "다른 차보다 떡차 만들기는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메주를 잘못 띄우면 검은 곰팡이가 나서 못쓴다. 검은 곰팡이는 몸에 해롭기 때문이다. 떡차도 마찬가지다. 하얀 곰팡이는 괜찮지만, 검은 곰팡이가 피면 꽝이다. 열 개를 만들면 서너 개가 그리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잘 띄우는 게 관건이다. 처음 사흘 가량은 방의 온도를 40도 정도로 후끈하게 했다가 미지근하게 낮춘다. 초반에는 고루고루 발효하라고 시간마다 뒤집어줘야 한다. 사람이 데리고 잔다고 할 만큼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거기에 비해 발효차 만들기는 간단하다. 시들려서 비빈 찻잎을 보자기에 뭉터기로 싸서 따뜻한 방에 하루 재웠다가 한나절 말리면 끝이다.

올해 백련사 떡차 만들기는 지난주로 마쳤다. 초파일 전에 딴 잎으로 한 번, 지난 주 초에 딴 것으로 또 한 번 만든 것을 보일러 때서 뜨뜻하게 데운 방에 널어 발효 중이다. 띄우는 게 끝나면 항아리에 담아 보관했다가 1년이 지나서 먹는다. 그 전에 먹어도 되지만 맛과 색이 제대로 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잘 숙성된 떡차는 두텁고 깊은 맛이 난다. 가루를 내서 우려 마셔도 되고, 덩어리째 끓여 마셔도 된다. 백련사 떡차는 덩어리를 떼어내 우려 마시는데,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게 끓여 마시기도 한다. 떡차에 파뿌리나 생강을 넣고 끓여 마시면 감기 몸살에 좋은 약이 된다.

여연스님은 "떡차는 오래 될수록 맛이 순하고 좋다"며 "보관만 잘하면 수십 년도 간다"고 설명했다. 검붉은 빛을 띠면서 진홍색이 나는 게 좋은 떡차라고 한다.

여연스님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차 전문가다.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서 18년 간 있으면서 차를 만들고 차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다가 5년 전 백련사로 왔다. 일지암은 다산과 교유했고 한국 차 문화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초의선사가 있던 곳이다.

강진=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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