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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세계탁구선수권 혼합복식 은메달 박영숙과 언니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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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세계탁구선수권 혼합복식 은메달 박영숙과 언니 명숙

입력
2013.05.2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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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시작한 동생이 왼손 점령 복식 뛰려고 언니는 오른손 선택 양손잡이라 피해의식은 없어같은 종목에서 함께 한 15년 최고의 지원군이자 무서운 스승이길 땐 기쁨도 두 배이지만 안 풀릴 땐 스트레스도 두 배실업팀 영숙이 돈벌이 나아 용돈이며 필요한 것 다 사줘 욕심 많은 동생 세계 정상 응원

한국 탁구계에서 역대 최강의 쌍둥이 박영숙(한국마사회)과 박명숙(이상 25ㆍ수원시청) 자매가 관심을 끌고 있다. 동생 박영숙이 2013 파리 세계탁구선수권 혼합복식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이들은 같은 종목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최고의 지원군이자 무서운 스승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탁구 라켓을 잡은 둘은 15년 만에 같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서로에게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지난 23일 경기 군포의 한국마사회 훈련장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쌍둥이조차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품 안에 담고 있는 유별난 아버지

지난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혼합복식 결승전. 박영숙은 이상수(삼성생명)와 함께 짝을 이뤄 북한의 김정-김혁봉 조와 대결을 펼쳤다. 유니폼 하의 속 주머니 에 5년 전 세상과 이별한 아버지의 사진을 품고 라켓을 연신 휘둘렸다. 아버지에게 우승을 받치는 세리머니를 오래 전부터 계획했지만 박영숙은 결승전에서 패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로 인해 애끓는 사부곡에 대한 세리머니는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박영숙은 "아버지가 한 번도 제 경기를 본 적이 없다. 제가 오지 못하게 한 것도 있다"며 "큰 대회에 우승하고 나서 반드시 하늘에서 보고 계실 아버지에게 우승 세리머니를 하겠다"라며 아버지를 회상했다. 언니 명숙은 "아버지가 유별나셨다. 어려운 형편에도 몸에 좋은 개고기, 인삼 등을 구해 뒷바라지를 했다. 영숙이도 어렸을 때 체력이 너무 약했는데 아버지의 정성 덕분에 지금처럼 건강해질 수 있었다"고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세계 최고 복식 조 꿈꿨던 쌍둥이

탁구 입문은 영숙이 빨랐다. 동생이 하는 것을 보고 언니 명숙도 초등 3학년 후반기에 탁구 라켓을 잡았다. 환상적인 복식 조를 꿈꿨기에 전형이 달라졌다. 명숙은 "영숙이가 먼저 왼손으로 탁구를 했다. 저도 처음에는 왼손으로 쳤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오른손으로 바꿨다"며 "주위에서 동생 때문에 피해를 본 게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양손잡이라 피해의식 같은 건 전혀 없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둘은 같은 초ㆍ중ㆍ고를 다니면서 복식 호흡을 맞췄다. 왼손, 오른손의 찰떡 궁합으로 고3때 대통령기에서 복식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생 영숙의 실력이 월등했기에 세계 최고의 복식 조 탄생의 꿈은 멀어졌다. 명숙은 동생에 대한 열등감이 있을 만도 했지만 고3 때 영숙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였다. 그는 "동생이 성적을 내서 그런 게 아니다. 자기가 스스로 나서 주장을 한다고 했다. 그래야 다른 동료들에게 모범을 보이면서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그 때 탁구에 대한 열정과 욕심을 알게 되자 인정하게 됐다"며 숨겨둔 속마음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그러자 영숙은 "여태껏 알지 못했던 내용이다. 주위에서 저보다 언니를 더 챙겨줬다. 그렇게 잘한 것도 아니고 못한 것도 아닌 실력이었기에 항상 신경이 쓰였다"라고 말했다.

심리적 위기 극복한 베스트 동생

실업 4년 차인 2010년 때 영숙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영숙은 "당시 너무 잘 풀리지 않고 한계에 부딪힌 것 같아서 그만두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명숙도 "동생이 웃어도 웃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며 든든한 지원군으로 동생이 다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게끔 도와줬다. 위기를 극복하자 환희가 찾아왔다. 2년 뒤 회장기 실업대회에서 영숙이 여자 단식에서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것. 전국체육대회에서 정상을 밟은 적은 있지만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한 대회에서 우승에 오른 건 회장기가 처음이었다. 명숙은 "탁구를 시작한 후 둘이 가장 기뻐했던 순간이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영숙은 명숙에게 최고의 동생이다. 명숙은 "동생이 용돈도 주고 필요한 것도 다 사주는 편"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아무래도 시군청 팀보다 돈벌이가 나은 영숙은 언니를 위해 아낌없이 베푼다. 또 영숙의 돈 관리도 맏언니인 향숙이 전담하고 있다. 명숙은 2009년 유니버시아드에서 대회 주최측이 자신을 영숙으로 착각해 본선 시드를 받을 뻔한 사연을 얘기하기도 했다. 결국 이를 알아챈 일본 선수들의 항의로 예선부터 치러야 했지만 명숙은 본선까지 오르며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심전심, 서로 다른 목표

쌍둥이인데다 같은 운동을 하고 있어 의지가 된다는 게 가장 큰 이점이다. 영숙은 "언니가 5분 먼저 태어났는데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잘 통한다. 가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존재감이 또렷해진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단점은 스트레스를 배로 받는 거란다. 명숙은 "동생이 나오는 경기는 다 챙겨본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도 라이브 중계로 빠짐없이 봤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영숙과 명숙은 같은 '행운의 팔찌'를 차고 뛰고 있기도 하다. 영숙은 "언니가 실을 꼬아서 만들어줬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도 팔찌를 차고 좋은 성적을 냈다"며 '행운의 부적'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목표는 달랐다. 영숙은 "주종목인 복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꿈"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명숙도 영숙의 욕심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욕심만큼만 해라"고 응원했다. 영숙은 "저는 그렇지 않은데 언니만큼은 마음을 비우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

군포=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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