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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논쟁] '일베'의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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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논쟁] '일베'의 일탈

입력
2013.05.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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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일탈'이 도를 넘어서고있다. '민주화'라는 말을 '왕따'라는 뜻으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5ㆍ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사진을 훼손하거나 '북한 특수부대와 연계된 폭동' 등으로 왜곡하는 글을 일베 회원들이 잇따라 게시하면서 논란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가학적 언어폭력 수준을 넘어선 내용도 적지 않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닭과 합성한 사진을 올렸고,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미시USA'사이트를 해킹했으며, 북한 대남 선전용사이트 우리민족끼리 회원을 '죄수번호'를 매겨 공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일베현상이 공존 소통 등 민주사회의 가치를 짓밟고 있다고 힐난한다.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일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베가 낳고 있는 폐해를 감안하면 단견이라는 비판이 우세하다.

이원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일베는 무질서하게 쪼개진 비체계적 집단"이라며 "언론이 진보ㆍ보수의 균형을 맞출 때 일베를 인용해 대표적 보수성향 집단으로 키운 측면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일베 논란 때문에 우리 사회는 소통역량을 더욱 제고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고 말했다. 이항우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익 지배집단의 적대주의 종북 담론이 낳을 수밖에 없었던 괴물이 바로 일베"라며 "일베현상을 계기로 우익 집단은 누구라도 자신들을 비판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소양을 갖출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전체와 부분이 따로 노는 구조적 한계… 객관적 사실 외면한 채 이념에만 매몰"● 이원재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대표적 보수사이트로 돌연 부상불통 한국사회의 한 단면 보는 듯표현의 자유 등 본질적 고민 필요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소셜컴퓨팅랩은 지난해 12월 26일 오후 9시부터 72시간 동안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다음 아고라의 정치게시판에 올라 온 모든 글과 댓글을 2시간 간격으로 수집, 네트워크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기간 일베 정치게시판에는 7,537명, 아고라 정치게시판에는 1,810명이 1회 이상 '본 글'을 올리며 활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커뮤니티를 비교하면 일베 사용자들 간의 네트워크는 매우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인기가 많은 일베 회원일수록 다른 회원들과의 관계를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반면 아고라에서는 인기 많은 사용자가 여러 친구 집단들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인기 많은 일베 사용자가 전체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특이한 모습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일베의 성격을 떠올려보면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베 사용자들은 당장 아우슈비츠조차 '가두리 양식장'이라 부를 정도로 기세 등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댓글 달아준 이를 찾아가 통성명하고, 셋 이상 의기투합하여 전체 네트워크를 누빌 정도의 응집력은 갖추지 못했다. 자신의 신원이 노출되는 '커밍아웃'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친구 집단을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다리는 '브로커'라고 불린다. 많은 집단을 연결해주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를 다루게 되고, 그만큼 위세가 높아지거나 전체 네트워크의 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요는 특유의 선정성과 폭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위와 같은 구조적 요건을 결여한 일베가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의제를 추진하기 위해 세력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무리라는 점이다. 아고라와 비교해보면 일베 네트워크는 전체와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작은 세계가 아니라, 각 부분들로 무질서하게 쪼개진 무작위 네트워크 쪽에 더 가깝다. 여성을 비하하는 게시물들을 맴도는 이들이 정보기관 여직원에게 무한 연민을 보내는 이들과 유기적으로 얽히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베는 현재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아이콘이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 비체계적이고 비조직화된 집단을 이러한 위치에 올려놓았을까? 이는 사실상 어느 순간부터 일베를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사이트'로 명명하기 시작한 언론에서 나왔다. 특정 사건에 좌우 양쪽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일베를 인용하는 것만큼 손쉬운 일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좌우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한국사회의 소통 역량을 높이는 데 과연 도움이 될까?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ㆍ경쟁하며, 나아가 소통에까지 이르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고, 그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현 정부가 국정 철학의 전면에 내세운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도 이 같은 역량의 핵심 요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소통을 향한 이 모든 과정에서 빠져서는 안 될 요소가 있다. 바로 객관적 사실에 대한 공중의 인정이다. 자신들에게 '불편한' 객관적 사실을 피構資?하는 이들은 흔히 이념이라는 무기로 맞선다. 그리고 '사실'이 지닌 힘은, 그것이 좌우의 중간에 기계적으로 놓이는 순간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결국 공허한 이념 대립만 남은 자리에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이념의 수호자들뿐이다.

일베를 내세웠던 언론은 "의견과 사실의 혼선이 소통을 가로막는다"는 소설가 김훈의 지적을 뼈아프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 경고는 일부 일베 비판가들에게도 해당된다. 이들이 일베에 대한 공적 탄압 운운하는 것은 비본질적인 것에 매몰돼 정작 본질적 문제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허수아비의 오류'에 불과하다. 우리 분석에 따르면 적어도 작년 말까지 일베는 특유의 반인륜적 내용 때문에 자발적으로 구성원들을 세력화할만한 구조적 역량조차 없었다. 지속적으로 관찰해야겠지만 만약 이 상태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면, 일베에 대한 논의는 박경신 고려대 교수가 제안한 것처럼 게시물의 내용 자체보다는 표현의 자유나 차별금지 같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또 다른 일베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을 지양하고, 사회의 소통 역량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종북에 대한 극단적 적대주의가 뿌리… 무차별적 혐오·독설 민주사회 괴물로"● 이항우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뉴라이트 운동 10년의 연장선보수언론·정치판 곳곳에 만연역사왜곡·지역주의 조장까지

지난해 미국에서 경험한 일이다.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시애틀 근교 숲길을 걷고 있었는데, 멀리 뒤쪽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우리 가까이에서 느려지기 시작했고, 바로 뒤에서는 걸음 소리로 바뀌었다. 작정이라도 한 듯, 우리와 나란히 몇 발자국 걷던 그 백인 남성은 갑자기 길바닥에 침을 뱉고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불쾌감과 긴장감이 스쳐 지나갔다. 서구에서 침 뱉는 행동은 수치스러운 풍습이 되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그의 종아리에는 나치를 상징하는 문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무뢰한이든 네오나치든 그런 사람은 어디든 있기 마련이라며 경계심은 씁쓸한 미소로 묻어버렸다.

'여자를 합법적으로 강간하는 법'을 베스트 게시물로 올리고, 전두환 군부에 저항하다 쓰러져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혹한 주검 사진을 놓고 '배달된 홍어들 포장완료'라고 희롱하는 '일베충'도 세상 어디에든 있기 마련인 그런 족속들이라고 그냥 외면해 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들의 말과 행동이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패륜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베의 극단적 성향이 그들의 '종북세력'에 대한 깊은 증오를 자양분으로 삼고 있고, 그래서 그들이 어떤 점에서는 지난 10여년 사이 꾸준히 진화해온 한국 우익의 최신 버전을 표상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라는 말을 '왕따'라는 말로 둔갑시킨 일베는 이제 '5ㆍ18 왜곡훼손 신고센터'까지 찾아가 '5ㆍ18은 폭동이야, 홍어들아'라는 글을 버젓이 남겨 놓는다. 광주항쟁은 북한군과 북한 추종세력의 난동이었다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무차별 비하와 조롱도 두 대통령이 종북이었다는 맹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아가, 호남에 대한 기존의 지역주의 공격에 덧붙여, 이제 일베는 호남이 오랜 세월 종북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했다는 종북주의 허깨비까지 덧씌우고 있다.

이런 행태는 가까이는 일부 대형 개신교회 목사들과 멀리는 뉴라이트 활동가들이 지난 10여 년 간 주도해온 '종북' 공세의 연장선상에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일부 '전향한 운동권'과 대형 교회 목사들이 주축이 된 뉴라이트는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며 친일을 옹호한 반면, 광범위한 민주세력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주사파 혹은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이를 통해, 그들은 친일과 독재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국의 우익 지배세력이 일정한 역사적 정당성을 획득하게 만드는데 적잖이 기여했다.

종북 공세는 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최근 십 수 년 사이 보수 신문간부들치고 종북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 기사를 쓴 기자는 아마 드물 것이다.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중 종북이라는 말을 담지 않고 정치적 주장을 펼친 사람도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종북'이란 무엇인가? 종북은 '친미'나 '친일'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오늘날 남한 대다수 시민들에게, 친미나 친일은 '적'이라는 관념을 내포하지 않지만, 종북은 그렇지 않다. 북한은 동족이지만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세력은 북한과 똑같은 적이거나 언제든 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다. 그러니 적은 아예 싹부터 자르고 박鉞瞞?한다. '종북'이라는 말이 이러한 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어, '종북' 담론에 토대를 둔 모든 정치 행위는 근본적으로 매우 적대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일베는 우익 지배집단의 적대주의 종북담론이 낳을 수밖에 없었던 괴물일 뿐이다.

한국의 우익 지배집단은 이제 북한만이 혹은 종북세력만이 자신들을 비판한다는 무지와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주의자도, 생태주의자도, 여성주의자도, 사회민주주의자도, 탈근대론자도 자신들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소양을 갖출 때도 되었다. 그래야만 진보와 보수 혹은 좌파와 우파 간의 서로 존중하고 경합하는 민주적 대결의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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