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이세섭)이 운영하는 한국문화의집(KOUSㆍ서울 대치동)에는 250석의 작은 극장이 있다. 여기서 2008년부터 해 온 팔무전(八舞傳)은 한국 전통춤의 최고 춤꾼들이 펼치는 한판 승부다. 한 번에 8명씩 나이 50~70대 명무들이 한 무대에 올라 평생 닦은 춤의 내공을 겨루니, 보는 눈이 호사를 누렸다. 작년 한 해를 걸러서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팔무전이 30, 31일 오후 8시 두 차례 판을 벌인다.
이번엔 여무열전(女舞列傳), 그러니까 여류춤 최고봉들의 배틀이다. 팔무전이 여자춤만 모으기는 처음이다. 늘 남자춤 여자춤을 섞어 올리다가 재작년엔 남자춤만으로 무대를 차렸다.
출연자 면면이 대단하고, 보여줄 춤의 장면도 다채롭다. 굿판, 법당, 기방, 궁궐 등 여러 처소의 춤을 모았다. 농악대 상쇠의 부포춤, 동해안 오구굿에서 망자의 넋을 청하는 신태무, 양 손에 북채 쥐고 추는 진도북춤, 사찰의 영산재에서 스님이 추는 나비춤, 뿌리는 절집에 두었으나 세간에서 발달한 승무, 기방에서 명주 수건 들고 추던 살풀이춤, 대궐 뜨락에 돗자리 펴고 추던 춘앵전, 일제강점기에 무속 장단에 얹어 만든 태평무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부포춤은 1960~70년대 여성농악단의 최고 스타 유지화(70)가 춘다. 부포는 농악대의 상쇠가 머리에 쓰는 벙거지 위에 달린 꽃송이를 가리킨다. 부포와 벙거지 사이를 쨋쨋하니 휘청대는 대공으로 연결해 꽃을 밀고 당길 때마다 벙싯벙싯 벌어졌다 오므라졌다 하는 모습이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하는 춤이다. 부포를 갖고 노는 웃놀음과, 꽹과리를 두드려 쇠가락을 부리는 아랫놀음이 어울려 내는 진멋이 일품이다.
북춤은 보통 북채 하나만 들고 치는데, 진도북춤은 쌍북채춤이라 장구춤처럼 다양한 가락이 나오고 몸짓 또한 다채롭다. 진도씻김굿의 작고한 명인 박병천에게 이 춤을 제대로 배운 황희연(56)이 춘다.
나비춤은 절간의 춤이라 세간에 나오는 일이 드문데, 한동희(68) 스님이 춘다. 양손에 모란꽃과 작약꽃을 나눠 들고 나비가 춤을 추듯 춘다 하여 나비춤이다.
동해안 오구굿의 신태무는 신태집이라 부르는 넋광주리를 들고 추는 장엄한 춤이다. 대대로 동해안굿을 해온 김석출 집안의 뛰어난 춤꾼, 김동연(59)이 춘다. 현란하기로 세계에 으뜸 갈 드렁갱이 장단을 타고 달아오르는 춤이 엑스터시를 불러일으킨다.
김정녀(74)의 살풀이춤은 이매방류이고, 이애주(67)의 승무는 한영숙류다. 태평무는 위풍당당한 춤이다. 몹시 까다로운 타악 장단을 밟아가는 정교한 발디딤새가 아주 볼 만한데, 이현자(77)의 강선영류 태평무로 무대에 오른다. 노란 앵삼을 입고 추는 단아하고 기품 넘치는 춘앵전은 김영숙(60)이 춘다.
춤을 제대로 불러내려면 음악이 잘 받쳐줘야 하는 법. 이번 춤판에 모은 악사는 무려 26명이다. 춤마다 음악이 다르고 악기 편성이 달라서 그리 되었다. 8명의 춤에 이만큼 많은 잽이가 거들기는 전에 없던 일이다. 본바닥의 최고 연주자들로 진용을 짰으니, 춤이 절로 나올 것 같다. 극장이 작다 보니 춤꾼의 숨소리나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팔무전은 올해로 마친다. 그간 명무 30여명이 이 무대에 섰다. 전통춤 공연이 대부분 아는 사람끼리 인사치레로 보러 가는 집안잔치인 것과 달리, 매번 기다렸다가 표를 사서 오는 관객들로 극장이 북적댔다. 팔무전을 꾸려온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은 "내로라 하는 춤꾼은 어지간히 망라했으니 이제 매듭을 짓고 새로운 형식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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