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의 핵심인 중소기업 금융 지원을 놓고 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적극적으로 중기 지원에 나설 것을 독려하는 한편으로는 건전성 관리도 강화하는 상반되는 정책을 추진해 은행들이 냉가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모순된 요구에 진퇴양난에 빠진 금융권에서는 이를 '창조경제 딜레마'라 부를 정도다.
27일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4월말 기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457조원으로 작년 말 446조8,000억원보다 10조2,000억원이 늘었다.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 잔액이 6조7,000억원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3조5,000억원이 중소기업에 더 지원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에 창조경제의 방점을 찍으면서 압박감을 느낀 은행들이 중기 대출을 늘린 결과다.
신용도와 상환 능력이 대기업이나 가계에 비해 떨어지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이 급증하면서 은행들의 여신 건전성도 악화되고 있다.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국내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4.0%로 작년 말(14.3%) 대비 0.3%포인트 하락했다. 수출입은행과 지방은행을 포함한 18개 국내은행 가운데 작년 말과 비교해서 BIS비율이 하락한 곳이 16곳에 이른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중소기업대출을 중심으로 위험가중자산이 증가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은행의 수익성은 갈수록 떨어지는데도 부실 위험이 큰 중기 금융 지원을 계속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올해 1분기 1.95%. 이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분기(1.91%) 이후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7월과 10월 기준금리 하락까지만 반영된 것으로, 이번 달 기준금리 하락까지 포함하면 앞으로의 수익성은 더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중기 금융 지원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올해 국내 은행권은 중소기업 대출 목표를 작년보다 4.8% 증가한 30조8,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연내 20조원이 넘는 자금을 더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금융위원회가 향후 3년간 6조원 규모로 조성을 추진 중인 창업ㆍ혁신기업 지원을 위한 '성장사다리 펀드'의 상당 부분도 은행권이 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성장사다리 펀드의 민간 재원 부분인 4조1,500억원이 어디서 나오겠느냐"며 "국민이 맡긴 예금을 관리해야 하는 은행에게 부실을 떠안으면서 엔젤 투자자가 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은행을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상반되는 주문이 계속되는 것이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0일 임원회의에서 "중기대출 강화 등 은행의 사회적 책임경영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은행의 안정적 수익성과 건전성이 긴요하다"며 "철저한 리스크 및 건전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은행 관계자는 "부실 위험 대출을 줄이면 리스크 및 건전성이 관리된다"며 "당국이 중기 지원을 늘리라고 해놓고 뒤로는 늘리지 말라고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초기라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중기 지원에 각종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상황인데, 금융당국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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