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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5월 28일] 괴뢰와 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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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5월 28일] 괴뢰와 역도

입력
2013.05.2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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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명박(MB)정부 출범 직후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한 정부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해 북한 신년공동사설은 "나라와 인민을 사랑하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민족 공동의 번영을 위하여 특색 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고 썼다. MB정부에 대한 기대가 나타나 있다. 새 정부가 보수정권이지만 실용주의를 표방한 만큼 이전 김대중, 노무현 정부만은 못해도 포용정책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기대했던 듯하다.

그러나 통일부 존폐 논란과 합참의장 내정자의 북핵 선제 타격 발언에 이어 북핵 선폐기를 전제로 한 MB정부 대북정책 '비핵ㆍ개방 3000'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이제나저제나 MB정부가 손 내밀기를 기다리며 관망하던 북한은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봤는지 4월 1일 노동신문을 통해 "이명박 역도(逆徒)"라고 실명을 거론하며 원색적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이 신문은 "이명박이 그 무슨 개방을 입에 올리는 것은 우리의 존엄과 체제에 대한 용납 못할 도발"이라며 '비핵ㆍ개방 3000'정책을"반동적 실용주의"라고 규정했다. 북한 매체들이 남측 대통령을 역도라고 비방한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 "문민 역도" 비난 이후 10여 년 만이었다. 이후 북 매체들은 남북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협잡꾼, 매국노, 정치몽유병환자, 알짜무식쟁이 등의 극악한 용어로 MB를 비난했다.

북한이 25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괴뢰대통령 박근혜"라고 원색 비난했다. 5년 전 데자뷰를 보는 것 같다. 시기만 2개월 가량 늦춰졌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북한 매체들은 박 대통령 이름을 직접 거명하는 일 없이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다. 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문맥에서도 '남조선 집권자''청와대 안방주인' 등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일정한 기대가 있었다는 반증이다.

그러던 북한이 돌변했다.'괴뢰'표현 외에도 "황당한 궤변" "요사스런 언행" "악담질" 등의 고수위 비난 용어를 동원했다. 박 대통령이 23일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존 햄리 소장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최고 존엄'을 비난했기 때문이다. 김 제1위원장이 계속해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도박을 했고, 경제발전과 핵개발을 병행하겠다는 새로운 도박을 시도하고 있다며 "그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북한에서'최고 존엄'은 매우 민감한 문제여서 융통성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선 예외 없이 최고의 수위로 대응한다. 그런데 이번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의 박 대통령 원색 비난은 단순히 '최고 존엄'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의 병진 노선이 성공할 수 없다는 등의 "무엄한 망발을 늘어놓았다"고 한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담화는 경제ㆍ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에 대해 "지난 세기 60년대의 엄혹한 환경에 대처해 우리가 내놓았던 경제ㆍ국방건설 병진 노선을 미국에 의하여 조성된 전쟁전야의 현 정세의 요구에 맞게 심화발전 시킨 새로운 높은 단계의 위대한 계승"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김정은 제1위원장 특사로 방중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6자회담 등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기 원하며 적극적 행동을 취하겠다"고 밝혔음에도 경제ㆍ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포기할 뜻이 없음을 명백히 한 셈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현 단계에서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은 대화다.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를 밀어붙이든지 아니면'3 no'대화를 추진하든지 이다. 3no란 핵무기량 증가 저지(no more), 소형화 등 성능 향상 저지(no better), 확산 방지(no export)를 뜻한다. 북한의 기세나 중국의 태도에 비춰 전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답은 후자다. 3no를 1단계 목표로 삼고 폐기를 궁극적 목표로 추구하는 게 보다 현실적이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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